2024년 9월 7일 하.복.주.새
예수님을 배척하는 선입견들
송영종


예수님을 배척하는 선입견들
마가복음 6장 1~6절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좇으니라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뇨 이 사람의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뇨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며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오늘은 예수님께서 고향인 갈릴리 나사렛을 찾아가셨습니다. 여기에는 예수님 혼자 가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도 함께 가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느때와 같이 예수님은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는 예루살렘에 다시 짓고 있던 헤롯 성전이 있었고, 또 각 마을마다 회당이라고 하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과거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잡혀 갔을 때, 그곳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없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회당이라는 곳을 만들어, 신앙과 전통을 이어가려고 하였습니다. 주로 회당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유대 전통과 규율 같은 것들을 교육하는 기관 역할을 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교육기관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예수님께서는 자주 찾아 가셔서,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분명 가르치는 선생 역할을 하는 랍비들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가르침에 잘못과 해석의 문제를 지적하시며, 바른 가르침을 주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회당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회당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보통은 회당에서는 예수님이 가르침을 주시면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놀라워하며, 또한 동시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무리들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특이하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무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6절에서, 예수님께서도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고 기록해 놓을 정도였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갈릴리 나사렛에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전도와 사역은 열매를 맺지 못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실패하신 것이 아니라,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의 반응은 약간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왜냐면, 본문 2절 말씀을 보시면, 그들도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놀라워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도 분명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도대체 이런 지혜가 어디서 나왔으며, 예수님께서 행하신 권능, 영어성경에 보면, 이것을 Miracles, 즉 기적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어쨌든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 엄청난 기적을 보고 놀라워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의 반응입니다. 분명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든 것들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인식은 전혀 다르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 보면, 예수님의 출신을 보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고향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누구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고, 누구의 자녀인지도 알고 있어서, 그들이 그런 반응을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 3절을 보면, 그것 때문에, “예수를 배척한지라” 기록해 놓았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권능은 인정하면서도, 예수님을 받아 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들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못 들은 것도 아니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과 이적을 못 본 것도 아닌데, 왜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였을까요? 이유는 그들이 이미 가지고 있던 선입견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미 그들이 알고 있는 예수님은 그들의 말처럼, 목수였던 청년 예수, 요셉의 아들 예수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고,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해석하였습니다. 그럼 그것이 왜 문제가 될까요? 지금 예수님은 그때의 예수님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서 말씀하고 사역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과거 예수님으로부터 이런 가르침이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면 아직 때가 차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리고 또 과거에는 예수님은 이런 기적과 이적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아직 공생애를 시작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은 전혀 다른 존재로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하신 사역들은, 도저히 사람이라면 알 수 없는 말씀을 하시고, 할 수도 없는 초자연적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지금 예수님을 달리 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 자신들의 관점에서 예수님을 이해하고, 이 땅에 오신 메시야로 받아드리지 않았으며, 믿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이 직접 찾아오시고, 보여주셨음에도, 구원을 받지 못하고, 여전히 지옥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그들은 불행하고 불쌍한 자들입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에서 우리의 모습이 떠 올랐습니다. 혹시 우리도 이들처럼 구세주가 왔으나, 구세주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는 자들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씀도 듣고, 놀라운 이적 현상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예수님을 참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선입견으로 또한 나의 생각과 판단으로 예수님을 먼저 필터링하고, 이해하기 때문에 오히려 예수님을 100%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예를 들면, 과학자는 과학적 관점에서, 기업가는 경제적 관점에서 예수님을 이해하려고 하고, 한국 사람은 한국식으로 예수님을 해석합니다. 모두가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가진 선입견을 가지고, 자기 방식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믿음을 가집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을 오래하고, 성경을 많이 안다고 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예수님을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믿고 있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코끼리 다리를 만지면서, 그것이 코끼리라고 착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은 자신의 이성적 틀을 통해 예수님을 이해하려고 해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시고 보여 주신 그대로 예수님을 이해하고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지식과 지혜를 뛰어 넘는 것이며, 하늘의 지혜와 하나님 나라에 관한 가르침을 주시기 때문에, 나의 경험과 지식은 오히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님이 주신 말씀으로만, 예수님을 제대로 바라보고, 영접하여, 진정한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