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4일 하.복.주.새
무엇이 옳은가를 생각하라
송영종


무엇이 옳은가를 생각하라
마가복음 3장 1~6절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편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엿보거늘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 일어서라 하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저희가 잠잠하거늘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니라
예수님의 사역은 바리새인들이 주축을 이루는 유대 사회에 많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과 많은 논쟁을 하셨고, 예수님은 언제나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의 본래의 뜻과 의미를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려고 노력하는 신실한 신앙인들이었습니다. 다만 그들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열심을 내었던 것이고,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제대로 알고 신앙생활을 하라고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럼 그들이 잘못 이해하고 해석하였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가장 자주 예수님과 충돌이 되었던 지점은 바로 안식일에 관한 논쟁이었습니다. 유대인들, 특별히 바리새인들이 말하는 안식일은 십계명에 기록한 것 외에 613개의 계명이 부수적으로 부가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십계명의 네번째 계명인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명령에 추가적이고 구체적인 세부 조항들이 613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안식일날 아무리 추워도 장작불을 피워서는 안된다는 계명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것도 일하는 것 중에 하나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고 논리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십계명에 대한 해석을 전혀 다르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십계명 본래의 뜻과 의미를, 수천년이 지난 이스라엘의 후손인, 유대인들에게 정확하게 알려주려 하신 것입니다.
그 한 사건이 오늘 안식일에 회당에서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주신 사건이었습니다. 오늘 사건은 한 사건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두 가지 문제가 함께 겹쳐 있다고 봐야 합니다. 첫째는 병자를 고쳐주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왜 꼭 안식일날 고쳐야 하느냐 하는 문제와 그리고 둘째로 병자를 고치기는 고치는데, 그 고침이 안식일에 고치는 것은 선한 것이 아니라 악한 행위를 한 것이라는 문제를 두고 예수님과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유대 바리새인들의 이 생각과 질문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왜 꼭 안식일에 고쳐야만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평일날 고쳐주었으면 이런 복잡한 논란이 없었을텐테 이렇게 생각이 드십니까? 그리고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는 것이 악한 행위라고 여겨 지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선한 행위는 평일날 해야 하고, 안식일에는 선한 행위조차 하면 안 된다는 말일까요? 선한 일과 악한 일에는 날짜와 요일이 정해져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바로 이런 바리새인들의 생각과 율법에 대한 잘못된 관념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계명을 오염시키고, 잘못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이 두가지 모두를 해결하신 해석의 키로 주시는 것은 선과 악의 접근이 아니라, 바로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의 접근은 옳으냐의 관점에서 접근하라고 가르쳐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안식일에 어떤 일을 하느냐에 대한 접근은 선과 악이라는 윤리적 접근이 아니라, 옳고 그름의 정의적 관점에서 접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만약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 위해서 병자를 고쳐주지 않는 것이, 율법적인 관점에서는 좋아 보일 수 있습니다. 신앙도 좋고, 말씀을 잘 지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병을 고칠 수 있는데,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좋은 뜻에서, 병자를 하루 동안 고통과 괴로움 속에 방치하는 것이 옳은 것이냐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문제가 안식일에 문제이기도 하지만, 다른 율법과 계명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유대 사회에서, 병이 든 사람과는 접촉하면 안 되는 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지금 갑자기 웅덩이에 빠졌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병자와 손을 잡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 웅덩이에 빠진 병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고 갈 가야 할까요? 그것이 선과 악의 문제일까요? 부정한 자가 되지 않기 위해, 웅덩이에 빠진 사람을 못 본 체하며 그냥 지나가는 행동이 잘했다, 못했다의 문제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십계명을 주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유대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고정관념과 선입견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그렇게 좋고 나쁘다로 규정하여 행동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것은 결코 하나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며, 또한 옳지도 않다고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안식일 자체가 아니라, 사람을 위한 안식일이어야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안식일이 되어야 한다는 깊은 영적 의미를 전달해 주셨습니다.
그렇다고 자기가 생각할 때 옳은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안식일에 자기가 생각한 옳은 행동을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해석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더 잘못 이해하고 해석하는 경우가 될 것입니다. 핵심은 다시 말씀드리지만, 계명을 주신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 관점에서 무엇이 옳고,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으냐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옳음의 기준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역으로, 안식일, 지금 우리로 하면 주일날, 만약 율법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니까, 자기가 괜찮다고 생각하고, 마음대로 놀고, 자기 시간을 보낸다면, 그 사람은 정확하게 바리새인들의 반대편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모욕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옳은가, 그리고 어떤 행동을 해야 주신 말씀과 계명을 제대로 순종하는 것인지를 발견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의 해석의 기준은 딱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관점과 접근을 어떤 식으로 하라는 것입니까? 정의의 관점, 무엇이 옳은가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가르침은, 율법을 부정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음대로 행동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행동이 아무리 선한 뜻이라 할지라도, 옳지 않으면 하면 안됩니다. 역으로 아무리 다른 사람이 틀렸다고,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옳은 일이면 우리는 행동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기준이 자기 자신 판단과 생각이 되면 안됩니다. 따라서 내가 생각할 때 좋다고, 마음대로 규정짓고, 함부로 행동하고, 남을 정죄하지 말고, 그것이 옳은지를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의 관점에서, 그 옳은 일을 제대로 실천하고, 준행하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