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3일 하.복.주.새

죄인을 부르러 오신 우리 예수님

송영종

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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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을 부르러 오신 우리 예수님

마가복음 2장 13~17절

  1.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무리가 다 나아왔거늘 예수께서 저희를 가르치시니라

  2.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3.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저희가 많이 있어서 예수를 좇음이러라

  4.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5.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에 따라 드디어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진리를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며,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는 사역을 지속적으로 행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2장 바로 앞 1장 마지막 부분 역시 예수님께서 한센병에 걸려 고침받기 위해 찾아온 환우를 고쳐주시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30년의 보통 사람의 생을 사신 후, 마침내 하나님 나라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공적 삶과 메시야의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의 그 사역을 위해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제자 마태를 부르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실 우리는 마태라는 이름에 더 익숙해 있지만, 마태의 본명은 레위였습니다. 그는 실제 마태복음을 쓴 저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레위라고 하였을까요? 아마도 마가가 4복음서 중 제일 먼저 쓰여진 책이기 때문에, 처음에 기록하였을 때 레위 이름을 그대로 기록하였다고 볼 수 있고, 이후에 예수님의 제자가 된 레위가 마태라는 이름을 새로 받아서, 자신이 기록한 복음서에는 마태라고 자신을 불러 기록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마태와 오늘 분문에 나오는 세리 레위는 같은 인물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나다나엘, 다른 이름으로 바돌로매를 부르신 후에 아마 세리 레위, 즉 마태를 부르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면, 예수님께서는 한꺼번에 12제자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계속적으로 12제자들을 완성해 가신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예수님께서 세관에 있는 세리 레위를 만나러 가셨습니다. 오늘 본문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다가 세리 레위를 만나신 것 같지만, 사실은 예수님께서 레위를 만나기 위해 그 길을 가신 것이라고 봐야 맞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레위에게 간단 명료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그러자 레위는 그 즉시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특이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라 말씀하셨다고 즉시 따른다는 것이 쉬운 일일까요? 우리 같으면 고민하거나 조금은 시간을 달라고 할 것 같은데, 레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를 때의 모습이 이와 같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순종할 때, 인간적인 생각이나, 손익계산을 따지지 않고, 즉시 따르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레위를 통해 보여 주시는 것 같습니다.

레위의 결단에는 많은 위험 요소들이 있었습니다. 그가 만약 예수님을 따랐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그는 다시 복직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직업적인 문제만 아니라, 자신의 목숨도 걸려 있는 문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레위는 그런 것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언뜻보면, 레위의 모습이 무모하고 너무 감정적으로 결정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레위가 예수님을 지금 즉시 따르는 결심과 결단은 더욱 대단한 신앙적 결단이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남달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튼 레위는 예수님을 따르기로 하고,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서,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거기에는 자신의 친구 세리들과 죄인들도 함께하여 식사를 하였습니다. 여기서 죄인들이라고 하는 것은, 당시 유대 사회에서 죄인들이라고 취급받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레위와 같이 세리들과 율법을 어긴 자들, 혹은 병든 자들과 부정한 자들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사실 유대 사회에서 사람취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천민들이 이었고, 부정한 자들로 취급되어, 다른 사람들과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런 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이상하다는 듯이 질문합니다,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주 귀중한 진리의 가르침과 복음 전파를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나.” 도저히 세상에서 들을 수 없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를 위하여 왔고,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분명하게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와 목적을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제대로 깨달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도 이 말씀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우리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병든 자와 죄인들을 부르러 오셨다는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사람들이 바로 이런 자들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 나라는 사람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에게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겸손한 자, 부족한 자, 병든 자, 약하고 작은 자에게 시민권이 주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메시야가 아니면, 이 세상 그 어떤 누구도 자신들을 사람취급 하지 않기 때문에, 또한 그 어떤 인간도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메시야를 찾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결코 건강하고, 부자고, 강하고, 가진 것이 많은 자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 나라가 필요 없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하나님 나라에 데리고 들어갈 바로 그 죄인들을 부르러 오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직 자신이 죄인인 줄 알고, 메시야를 찾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죄인들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사역은 교회에게 주어진 줄 믿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몸 된 교회에서는 잘 난 사람, 건강한 사람, 돈 많은 사람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하고, 죄가 많은 죄인들이 부름을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교회는 잘난 사람이 없습니다. 차별도 없습니다. 우리 거룩한 교회에서는 모두가 죄인들인 줄 알고, 구원자 되신 예수님만 믿고 그 말씀에 즉각 순종하며 따르는 제자들 만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