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6일 하.복.주.새
그리스도를 분별할 수 있는 자
송영종


그리스도를 분별할 수 있는 자
누가복음 3장 15~17절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의논하니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당시만 해도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신구약 암흑기 시기에는 바벨론에서 페르시야의 지배로 이어졌고, 페르시야가 망하자 그리스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그리스가 망하자 당시 그리스 알렉산더 대왕의 휘하에 있던 장군들이 제국을 분할 통치하며 여전히 이스라엘은 독립국가로 존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BC 142년에 마키비 혁명으로 이스라엘에 하스모니안 왕조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하스모니안 왕조는 그 왕권의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한 상태에서 명맥을 유지해 갔습니다. 이유는 하스모니아안 왕조는 이스라엘 정통 유다 족속이 아니라 레위 족속이 세운 정치권력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세워진 나라가 형제간의 권력 다툼으로 불과 79년만인 BC 63년 로마의 폼페이 장군에 의해 멸망하게 되고, BC 55년부터는 그 유명한 헤롯대왕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습니다. 또 다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고, 헤롯대왕은 로마 권력 아래 분봉왕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헤롯대왕 통치 시기에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것입니다. 아무튼 이런 정치적, 사회적 혼란과 불안 속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유일하게 하나로 묶고 있는 끈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메시야 사상이었습니다. 메시야가 오면, 자신들의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해결에 줄 것이고, 다시는 남의 나라의 노예로 살아가지 않아도 되고, 오히려 다윗 왕 때와 같이, 그 어떤 주변의 나라도 넘보지 못하는 강한 나라가 될 것이라는 대망을 가지고 겨우겨우 힘겨운 시기를 넘기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혜성같이 나타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약대 털옷을 입으며,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고, 많은 자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였습니다. 그의 말씀은 힘이 있었고, 누구든지 세례 요한의 말을 들으면, 마음이 찔리고, 회개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의 말을 듣기 위해 그를 찾아왔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세상 돌아가는 것은 불안하기 그지없고, 백성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디로 가야 할 지 그 삶의 방향의 갈피를 잡지 못할 시기였기에, 세례 요한의 말 한마디가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세례 요한이라는 인물이 자신들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마음은 안심이 되었고, 든든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급기야 사람들은 오늘 본문 15절에 나오는 것처럼, 세례 요한을 ‘그 메시야’ ‘그 그리스도’이지 않을까 심각하게 고민하며 의논하기 시작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상황에서 생각해 보면, 세례 요한 같은 존재가 그들에게 그리스도요, 구세주같이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되며, 또 그들의 구세주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었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럼에도, 제가 여기에서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은, 유대인들이 가진 그 무지한 신앙과 껍데기 같은 믿음입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씀드린 것처럼, 메시야에 대한 소망과 믿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미 신앙과 믿음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메시야가 누구인가를 전혀 알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알기는 아는데, 그 실체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실제 예수님께서 오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야 이심을 알지 못하고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지혜의 책은 가졌는데, 읽지는 못하는것과 같고, 진짜 금을 가졌으나 돌로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례 요한같이 조금만 뛰어난 것들이 보이면, 사람들은 그런 인간을 이 세상을 구원할 구원자로 착각하고, 그를 추앙하고 따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도 그리스도가 있다, 저기도 그리스도가 있다 하며, 온갖 이단들과 사이비 구세주에게 농락당하는 신세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그렇게 무지함 가운데 쫓아다니기 보다는, 실체가 무엇인지, 누가 정말 메시야 인지를 밝히 알아, 그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 금방 알아보고 영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어야 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들은 진정한 구원자 그리스도를 만나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말씀이 당시 어리석은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일까요? 지금 우리들도 구세주가 정확하게 누구인지 알지 못하면, 신천지의 이만희를, 만민중앙교회의 이재록을, 그리고 기독교복음선교회 JMS 정명석이 같은 인간들을 구세주로 따라다닐 수 있습니다. 수많은 이단들이 지금도 자신들을 구세주로, 메시야로 둔갑시켜 사람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메시야인지도 중요하지만, 왜 그가 메시야이신가를 정확하게 깨달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며 섬길 수 있는 예수님의 백성, 제자들이 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가 되지 못하고, 예수님만이 그리스도라 할 수 있습니까? 바로 그것을 세례 요한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6절에 정확하게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성령을 받아야 메시야의 사람이 되고, 구원받은 백성이라는 확증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 성령을 보내시는 그 메시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번째로 알곡과 쭉정이를 분리하여 알곡은 천국 곳간에, 쭉정이는 불로 심판하시는 재판권을 가진 분이 메시야 이신 줄 믿습니다. 바로 그런 생사의 권한을 가지신 분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구원자가 되시는데, 예수님이 그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분이기에,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인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 시대에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영 분별입니다. 우리에게는 성경도 있고, 믿음도 있지만, 정작 영적 분별력이 없다면, 우리 역시도 다른 인간을 그리스도라 착각하며, 사망의 길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 더욱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여, 알곡 같은 신앙과 믿음을 소유하는 교회와 성도가 될 수 있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