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4일 하.복.주.새
알고 있는 바를 확실하게 하려
송영종


알고 있는 바를 확실하게 하려
누가복음 1장 1~4절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오늘부터 누가복음에 대하여 함께 말씀을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누가복음의 저자는 누가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정확하게 누구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의 직업이 의사라는 것은 골로새서 4장 14절의 기록에 의해서 알 수가 있고, 그리고 누가는 바울과 동역한 사람이라는 것을 빌레몬서 1장 24절 말씀을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의사인 누가는 선교 여행을 다니던 사도 바울을 만나게 되어 함께 동역한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누가가 누가복음을 기록하게 된 목적은 오늘 본문 3절에 나오는 것처럼, ‘데오빌로 각하’라고 하는 고위 관직에 있는 사람에게 보내기 위해 쓰여 졌습니다. 그 이유 역시 4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데오빌로라고 하는 인물이 기독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에 좀 더 자세히 그리고 확실하게 알려 주려고 이 복음서를 기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누가는 무엇을 좀 더 자세히 그리고 확실하게 알려 주려고 할까요? 그것도 이미 알고 있는 그 내용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인간 예수에 관한 것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미 묵상하였듯이, 마태와 마가복음을 통해 예수님에 대한 소문과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간 예수님, 혹은 예수님의 인간성에 대한 부분들은 누가복음만큼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례 요한의 수태 고지, 예수님의 성령 잉태, 그리고 예수님의 어린시절 이야기, 특히나 예수님 마지막 일정인 예루살렘의 입성,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 후 어디에서 승천하셨는지까지 아주 자세히 인간 예수님의 행적을 알려주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배경을 들으면서,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바로 예수님의 역사성 때문입니다. 의사인 누가가 마치 수술 기록을 자세히 적어 놓은 것과 같이, 예수님의 탄생부터 사역, 활동과 메시지, 그리고 마지막 예루살렘 입성과 빌라보의 심판, 십자가 위에서 피 흐르려 죽으심, 그리고 부활까지 너무 자세히 기록했다는 것은, 예수님이라는 인물이 실제 역사적으로 존재하였다는 것을 밝히고 싶었고, 더욱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 그리고 실제로 어떻게 그런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는지를 알리고 싶어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누가가 굳이 그렇게 하려고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예수님의 역사성을 문제 삼거나 아직도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 특히나 십자가 사건과 부활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그것이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무엇을 의미하고, 또한 그래서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 복음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게 하려고 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우리 모두가 매우 관심있게 보아야 생각합니다. 왜냐면, 우리들 가운데에도, 또는 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도, 아직까지 예수님이 실제 존재한 분이셨는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는지, 그리고 정말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는지를 믿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런 분들은 어떻게 신앙과 믿음을 가지고 예수를 믿고 있을까요? 그런 신앙을 가진 분들은 예수님이 설령 2000년 전에 실제 존재하지 않은 분이라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 분들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 교훈, 메시지가 중요한 것이지, 실제 있어도 되고,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들 무슨 문제가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한국 고전 소설에 나오는 홍길동전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홍길동전에 나오는 홍길동이 실제 인물인지 아닌지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홍길동처럼, 서자 신분에 태어났지만, 그래도 당시 사회적 부조리와 신분 차별에 맞서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점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심청전은 어떤가요? 심청전에 심청이가 정말 실제 존재한 인물일까요? 아니면 소설의 허구의 인물일까요? 만약 실제 인물을 믿지 않고, 소설 속 허구의 인물을 믿는다면, 그 신앙과 믿음은 진짜 제대로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와 같이, 예수님에 대한 실제성과 역사성보다는 역사적 의미와 교훈만 있으면 된다고 하는 의식은 기독교(복음)를 윤리 도덕으로 인식하고, 예수님의 이야기를 단순한 종교적 교훈으로 치부하고, 이 세상을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행동 규범 종교로만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이런 식으로만 읽고 묵상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실제 존재하든, 하지 않든 관심이 없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피로 우리의 죄가 용서받고, 우리가 정말 죄인에서 의인이 되었다는 사실과 구원의 효력은 사라지고, 아무 의미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은 하나의 문학작품의 특별한 인물에 불과하고, 성경은 영적소설로 읽히고 말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구하고 죽었다고 가정하고, 그 죽음의 교훈과 가르침으로 이 사건을 이해한다면, 다른 사람을 위해 죽는 것은 거룩한 희생이고 고귀한 사랑이니까,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겠다 라고 마무리한다면, 실제 그 사람의 행위와 의미와 가치는 어떻게 되나요? 다른 사람을 위해 죽었다는 그 사실과 왜 그렇게 죽어야만 했는지에 대한 의미가 무의미하고 그 가치가 사라질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그런 것들에 대해 우리는 좀 더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훈과 가르침은 바로 그 사실 자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은 예수님 외에 그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유일한 신적인 행위입니다. 부활 자체가 너무나 실제로 이세상, 이 역사 안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에게도 일어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목숨 걸고 믿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존재하든 말든, 예수님이 인류를 위한 행하신 그 희생적 사랑만 생각한다면, 십자가 사건과 부활은 우리에게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실제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부활이 일어날까요?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전하려는 것이 바로 그런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것은 오늘날 우리들 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인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의 기록은 교훈집이나 윤리 도덕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계시를 기록한 말씀입니다. 그것은 우리 역사 안에서 실제 일어난 일이고, 그 일을 믿으므로, 우리가 믿음의 근거를 가지게 되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사 안으로 들어오신 성육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과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그 예수님을 사실 그대로 믿는 거룩한 교회와 성도가 되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