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1일 하.복.주.새
예수님의 부활은 나의 부활
송영종


예수님의 부활은 나의 부활
마가복음 16장 1~8절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찌기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눈을 들어본즉 돌이 벌써 굴려졌으니 그 돌이 심히 크더라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여자들이 심히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유안진이라는 시인의 “내 믿음의 부활절”이란 시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노래한 것입니다, “지난겨울, 얼어 죽은 그루터기에도, 새싹이 돕습니다. 말라 죽은 가지 끝, 굳은 티눈에서도, 분홍 꽃잎 눈부시게 피어납니다. 저 하찮은 풀포기도, 거듭 살려내시는 하나님, 죽음도 물리쳐 부활의 증거 되신 예수님, 깊이 잠든 나의 마음, 말라죽은 나의 신앙도, 살아나고 싶습니다. 당신이 살아나신 기적의 동굴 앞에, 이슬 젖은 풀포기로, 부활하고 싶습니다. 그윽한 믿음의 향기, 풍겨내고 싶습니다. 해마다 기적의 증거가 되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아침, 아름다운 시로 찬양하는 듯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할 것을 소망하며, 부활의 신앙을 가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정말 부활하실 것이라고 믿지 못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제자들과 예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특별히 오늘 마가는 한 무리의 여인들이 예수님의 부활하신 날 아침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온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여인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라고 하는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죽은 시신에 바를 향품을 가지고 동이 트자 마자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 무거운 무덤 문은 열려 있었고, 무덤 안으로 들어가자, 그들은 천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천사를 만나는 경우가 흔한 경우일까요? 아마 평생 가도 천사를 직접 대면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 안에서 천사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두려워 떨고 있는 여인들에게 천사가 말하였습니다,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여인들이 보니 실제 예수님의 죽은 시신은 거기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인들은 몹시 놀라서 무덤에서 나오자 마자 도망갔고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못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여인과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면, 여러분은 어떨 것 같습니까? 예수님이 살아나셨다고 마냥 기뻐했을까요? 아니면 천사를 만났으니, 그 말이 진짜구나 하고 믿음으로 받아 드렸을까요? 아마 우리도 그 여인들과 같이, 말도 하지 못하고, 무서워 벌벌 떨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당황하며 패닉에 빠졌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정말 예수님이 어떻게 되신 것일까 의심하거나 의구심을 품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당시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어떠했습니까? 어떻게 하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던 상황에서, 마침내 예수님을 죽이고, 심지어 부활한다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대제사장들은 무덤을 지키는 군사의 수를 더 늘려 놓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그 여인들이 생각하기에, 혹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다른 곳으로 옮겼을까 하는 생각까지도 하지 않았을까요? 이처럼 당시 상황과 정황을 놓고 보면, 지금 우리가 편하게 생각하는 것과 같지 않고, 오히려 굉장히 급박하게 이 부활의 문제를 생각하며, 의문과 의구심을 가지고 접근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의심과 의구심을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도 여전히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부활하지 않았다고 부정하거나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부활한 것은 맞다고 믿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의구심을 가지고 있거나, 또는 예수님의 시체가 어디로 어떻게 없어졌을까 의구심을 가지고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더욱이 자유주의 신학적 입장을 가진 교회들과 성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은 알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설령 부활했다고 주장하더라도, 증명할 길이 없으니, 그냥 믿음으로 받아 드리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설교합니다. 대신에 부활은 정확한 역사적 사건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를 생각하면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잘못이고, 죄악입니다. 정확하게 역사적으로 무덤에서 예수님이 살아나셨는데, 그것을 2000년이 지난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변명하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자들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보지 않았다고 예수님의 부활이 진짜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적인 주장이 아니라, 우리는 분명 예수님께서 2000년 전 그 무덤에서 살아나셨다는 그 사실을 믿고 확신하며, 그와 같이 우리도 그런 육체적 부활이 우리에게도 있을 것이라 믿으며, 부활의 소망의 신앙을 가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 확실한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를 가지는 것이 바로 증인들의 증언입니다. 자유주의 신학과 신앙을 가진 교회와 성도들은 부활의 의미만을 믿는지 몰라도, 우리는 예수 부활의 사실을 믿고, 죽음 이후 분명히 신령한 육체의 부활이 있음을 확신합니다. 그 이유가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7절 말씀 때문입니다.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천사가 여인들에게 명령하였습니다. 가서 예수님이 살아나셨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들이 직접 보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직접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직접 만났습니다. 한 두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제자들과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부활하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승천하실 때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데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수많은 증인이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증언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 앞에서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을까요?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것보다 부활이라는 의미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제정신을 가진 신앙과 믿음이라 할 수 있을까요?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들에게 바로 이 부분을 알려 주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히 ‘짠’ 하고 나타나는 마술 같은 일이 아니라, 실제 일어난 일이고, 그 일에 증인과 증언이 있음을 알려주며, 이제 우리도 그와 같은 증인이 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면, 예수님께서 살아 계실 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그렇게 신령한 육체의 부활을 하게 될 것을 믿는 신앙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나의 부활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나만을 위한 부활이 아니라, 믿는자 모두의 부활이라는 복음을 전하는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