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0일 하.복.주.새
로마 군인에게 고통 당하시는 예수님
송영종


로마 군인에게 고통 당하시는 예수님
마가복음 15장 16~20절
군병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엮어 씌우고
예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찌어다 하고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희롱을 다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예수님께서는 빌라도 총독 앞에서 불의한 재판을 받으시고, 이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위해 로마 군인들에게 끌려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빌라도의 재판은 공정하지도 그리고 합리적이지도 않는 판결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말 한마디 하지 않으시고, 지금 군인들에게 끌려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게 되셨습니다. 주석에 보면 이때, 이 뜰에 모인 로마 군인들의 숫자가 약 2천명이 넘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께서 수천명의 로마 군인들이 모인 곳에서 온갖 멸시와 천대, 조롱과 매질을 당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씌웠다고 하였고, 침을 뱉으며, 심지어 갈대로 예수님의 머리를 치기까지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이여 부르며 빈정거렸고, 희롱하였으며, 그 모든 것을 다한 후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기 위해 다시 끌고 나갔다 하였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육체적으로도 견디기 힘드셨지만, 인간적, 인격적 모욕을 참으시기는 정말 힘드셨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당장이라도 하늘의 천군 천사를 동원하여, 이 모든 로마 군사들을 쓸어버릴 수 있음에도, 예수님은 길이 참으사, 그 모든 고문과 고통과 조롱을 견디셨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을 우리는 그냥 단순히 예수님께서 로마 군인들에게 이렇게 고통과 모욕을 당하셨구나 하는 기록과 설명으로 지나갈 일은 아니라고 생각이 됩니다. 로마 군인들의 예수님에 대한 이런 폭행과 폭언, 그리고 조롱을 통해, 우리가 영적으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로마 군인들은 왜 예수님을 이렇게 비인간적으로 또는 비인격적으로 대하며, 조롱하며 비웃었을까요? 그리고 로마 군인들의 이 행동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먼저, 로마 군인들이 이렇게 예수님에게 못할 짓을 한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예수님을 죽이라고 외쳤던 유대인들 때문이었습니다. 로마 군인인 로마인들이 무엇을 알겠습니까? 오직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그렇게 대우하고, 미워했기 때문에, 로마 군인들 역시 예수님을 그렇게 대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유대인들이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칭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 바로 선민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금 하나님의 아들, 아니 하나님을 이렇게 조롱받고 모욕당하는 곳에 이르게 했다는 점을 우리가 주목해야 합니다. 누가 예수님을 못 박았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못 박았습니다. 그 말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못박아 죽일수도 있다는 점을 우리는 매우 주의깊게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자라고 고백하는 자들이, 예수님을 두 번 못 박아 죽이는 일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우리가, 예수님을 무시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함부로 행동하고 말하면, 로마군인 같은 세상 사람들이, 우리 예수님을 그렇게 천박하게 모욕하며, 조롱하듯 대하지 않을까요? 마치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함부로 대함으로, 로마 군인들도 예수님을 그렇게 모욕하듯이,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존귀히 여기지 않고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세상에서 예수님의 존재는 어떻게 여겨지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이름조차 지우려고 하는 실정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때문에 교회를 나오지 않겠다고 말할 정도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 점을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를 쉽게 생각하면, 세상 사람들도 교회를 쉽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높이지 않고, 우리가 예수님의 향기가 되지 못하고,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고 생활하면, 세상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이 예수님을 그렇게 취급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무지한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을 이렇게 대하는 것은, 오로지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하는 유대인들이 위선적 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이런 위선적 신앙의 모습은 동시에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분명하게 깨닫게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어떻게 알고 인식하며, 말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세상 사람들도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와 인식이 달라질 줄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대하는 것과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달라질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믿지 않는데,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고,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삶을 사는데,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과 같은 우리의 위선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높이어, 세상도 예수님을 높이고 존귀히 여길 수 있고, 믿음으로 복음을 받아드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오늘 이 장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를 믿는 자들이 당하는 고통과 모욕이 바로 이와 같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를 편하게 믿지만, 어느 순간 예수를 믿는 것으로 인해, 지금 로마 군인들이 폭행하고 폭언하며 조롱하듯이, 우리에게 이런 일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겠다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금 예수님이 당하신 고통과 고문은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이기 때문에 당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 자들은 어떻겠습니까? 예수를 믿는다는 그 이유만으로 이런 고문과 고통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럴 때 과연 우리가 끝까지 예수 부인하지 않고 믿음으로 신앙을 지킬 수 있을까요? 그래서 오늘 예수님의 고통과 고난을 당하시는 이 장면은 우리들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라고 여겨집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저 예수님이 당하는 고통으로만 느껴 지십니까? 아니면 예수님의 저 모습이 바로 앞으로 내가 당할 수 있는 모습일 수 있겠다고 생각이 되어 지시는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매년 예수님의 고난 주간을 지키고 십자가의 고난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은 단지 예수님만 가신 길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도 그 길을 가야 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길에는 반드시 이런 저런 고난과 고통이 반드시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죄에서 벗어나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믿으시고, 오늘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우리도 온전히 따라갈 수 있는 우리 거룩한 교회와 거룩한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