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9일 하.복.주.새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마리아

송영종

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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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마리아

마가복음 14장 1~9절

  1.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일 방책을 구하며

  2. 가로되 민요가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말자 하더라

  3.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4. 어떤 사람들이 분내어 서로 말하되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6.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8.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이틀 전, 예수님은 베다니 나병환자의 집에서 식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베다니에서 죽은지 나흘만에 살아난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식사하시는 예수님에게 값비싼 향유를 가지고 예수님 머리에 붓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제자가 화를 내며, 어찌하여 이 비싼 향유를 허비하느냐 하며 마리아에게 야단을 쳤습니다. 야단을 친 예수님의 제자는 바로 가룟 유다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가만히 두라 말씀하시며, 오히려 마리아의 행동에 좋은 일을 하였다고 칭찬까지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이 곧 죽게 될 것이고, 마리아의 행동은 자신의 장례를 위한 행동이라고 말씀하시고, 이제 예수님이 제자들을 떠나 가시게 되었음도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가룟 유다와 향유를 부은 마리아의 행동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의 말을 들어 보면,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이 들립니다. 당시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부은 향유의 값이 삼백 데나리온 이상 해당된다고 한다면, 당시 유대인 노동자 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이니까, 삼백 데나리온은 거의 1년치에 해당하는 정말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에게 부어 드린 것은 맞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비싼 향유 말고, 조금 저렴한 것을 사서, 예수님께 드리고, 나머지 남는 것을 가지고, 가난한 자들에게 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며 야단치는 가룟 유다의 말을 들으면 그가 참으로 괜찮은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그의 속마음이 정확하게 나오지 않았지만, 요한복음 12장 6절에 보면, 그가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말하고 행동했는지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그러니까 가룟 유다가 정말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서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라, 만약 마리아가 돈을 절약하여 그 돈을 가룟 유다에게 주었다면, 그는 틀림없이 그 돈을 착복하였을 것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가만히 보면, 가룟 유다는 처음부터 제자들 가운데 회계를 맡았던 것 같고, 그는 과거에도 이런 식으로 재정을 훔쳐갔던 경험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런 가룟 유다의 성향을 아시기 때문일까요, 그에게 마리아를 야단치지 말고 가만히 두라고 하시고, 마리아가 자신에게 향유 붓는 것을 계속하게 하셨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렇게 보면, 가룟 유다는 왜 예수님을 3년이나 따라다녔으면서, 이렇게까지 밖에 생각하지 못하였을까요? 지금까지 예수님이 행하시고, 보여 주신 것만 해도, 저 같으면 정말 잘 믿고 따랐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해서 가룟 유다는 계속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일까요?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가룟 유다를 보면, 어쩌면 우리 교회 안에서도, 아니 우리 교인들 가운데서 이런 생각으로 예수님을 믿고 따라다니며 신앙생활하고 있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죠. 그러나 그런 신앙과 믿음은 결코 예수님께서 원하시지도, 또 늘 말씀하신 제자의 삶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가룟 유다의 신앙의 중심은 예수님이 아니고, 실용적 이익에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그는 실제적으로 인간에게 어떤 식으로 해야 이익이 있고 유익을 주느냐에 관심을 가진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은 겉으로 보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모든 것이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사적인 욕심이 생겨서 죄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아닌, 그리고 말씀 외에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지면, 죄를 짓는 삶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줄로 믿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에게 삼백 데나리온의 향유를 부은 마리아의 신앙과 믿음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사실 마리아 역시도 이 삼백 데나리온이 얼마나 비싼 금액인 줄 몰랐을까요? 알죠. 알고 있지만, 그는 지금 예수님에게 그렇게 드렸습니다. 마리아의 이런 행동을 이해하는 데는 예수님의 설명이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본문 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마리아가 왜 자신에게 이렇게 값비싼 향유를 붓는지에 대해 언급하시기를, 자신의 장례를 미리 준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정말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였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마리아가 그런 능력이 있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마리아의 행위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자신을 위한 장례 행위로 해석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행위는 정말 그렇게 장례를 위해 사용된 행위가 되어 버렸습니다. 유대 사회에서 사람이 죽은 뒤 장사 지낼 때 몸에 향유를 발라주는 관습이 있었으니, 예수님께서 이틀 뒤면 이렇게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아시고, 마리아의 행위를 그렇게 해석해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이런 행위를 왜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몸을 장례하는 행위가 되었지만, 그가 어떻게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몸에 붓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죠. 거기에는 자신의 오라버니 나사로의 죽음과 다시 살아남 사건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죽은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는 자신의 두 눈으로 자신의 오라버니 나사로가 죽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는 것을 직접 목격한 산 증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죽음도 이기고 생명을 주시는 이는, 이 세상에 예수님 한 분 밖에 없다고 확신하였고, 그리고 그때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1장 40절에 하신 말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기억하였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마리아의 행위는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려,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광 되심을 나타내는 거룩한 예식을 행한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의 이 행위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 기억되어야 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행위가 예수님이 하나님 영광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복음이 전파되는 행위와 같은 것이라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룟 유다처럼, 겉으로는 좋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속으로는 전혀 다른 생각하는 제자가 있는가 하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림으로 자신은 드러나지 않고, 죽은 자도 살리시는 구원자 예수님이 드러나고, 그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행위로 이어지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팔아 넘긴 가짜 제자가 되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려 하나님의 영광되시는 예수님을 드러낸 마리아는 모든 사람들이 기억하는 예수님의 진짜 제자가 된 줄 믿습니다. 우리도 마리아와 같이, 우리가 직접 보고 들은 그 예수님을 드러나고, 가장 귀한 것을 드려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거룩한 제자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