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4일 하.복.주.새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송영종

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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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마가복음 11장 12~14절

  1. 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2.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3.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이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습니다. 십자가 사역을 감당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환호 속에 입성하셨지만, 예수님의 마음은 결코 기쁘지 않았습니다. 물론 십자가의 죽으심 사역은 자신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엄청난 영적 사건이기 때문에 기쁘고 감사한 일이었지만, 예수님께서도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지라 인간적인 고통과 고뇌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예수님을 두렵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섭리에 순종하여 예수님께서는 이 십자가의 길을 가기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예수님께서 베다니에서 나와 길을 가시다가, 시장하셨을까요? 멀리 보이는 한 무화과 나무 곁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무화과 나무에 혹 열매가 있을까 하여 보셨지만, 무화과 나무에는 무성한 잎사귀 외에 아무 열매도 맺혀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무화과 나무에게 저주를 내리셨습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조금은 이상한 것을 발견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없다는 것을 모르고 가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오늘 본문에 분명히 기록하기를,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는 이유가 이는 무화과 때가 아니라고 설명해 놓았는데, 그렇다면 무화과 때가 아니어서, 열매가 없을 때인데, 왜 예수님은 무과화 열매가 없다고 저주를 하셨을까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당시 이스라엘 시대로 돌아가 봐야겠습니다. 도대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무슨 뜻이 있고, 의미를 가지는지 지금 우리 시대의 관점으로는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자치 잘못하면 예수님께서 이상한 분으로 오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유대적 환경 속에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지금 중요한 것은 무화과 나무와 열매일 것입니다.

그런데 왜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없었을까요? 정말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아직 열릴 시기도 아닌데 예수님께서 찾으셨고, 그 열매가 없자, 예수님께서 저주를 내리셨다면, 예수님께서 너무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지금 시점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실 때가 4월 경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서 4월은 무화과 나무에 아직 열매가 맺힐 시기는 아니라고 합니다. 보통 무화과 나무의 열매를 보려면 5월이나 6월 정도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4월이 되면, 아주 작은 열매가 무화과 나무에 보이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아직 완전히 익지 않아서 먹을 수는 없지만, 작은 열매가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작은 열매가 5월이나 6월경에 완전히 익어 사람들이 그 열매를 먹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께서 찾으시는 것이 완전히 익은 무화과 나무 열매를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작은 열매를 보기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작은 열매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작은 열매가 보이지 않는 것이 그토록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단순히 작은 열매가 열리지 않아서가 아니라, 정말 문제가 된 것은 그 무성한 잎사귀였습니다. 왜냐면 무성한 잎사귀를 보면, 무엇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까? 작은 열매가 맺혀 있을 것이라고 누구나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잎이 무성하면 작은 열매가 맺혀 있다는 증거가 되고, 작은 열매가 있다는 말은 그 잎이 무성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무화과 나무는 잎은 무성한 데, 그 작은 열매조차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저주를 내리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보기에는 풍성하게 보이지만, 실제 작은 열매조차 보이지 않으니, 그 나무는 나중에 5월, 6월이 되어도 결코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열매가 맺지 못하는 나무가 잎만 무성하게 자랐다는 것은 그 어떠한 열매도 맺지 못하면서 겉으로만 화려하고, 뭐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비단 위선적인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지금 예수님을 같이 따라다니는 제자들에게도 겉으로 풍성한 것처럼 보이지 말고 작은 열매라도 맺어야 한다는 경고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앙생활 한다고 하면서, 제대로 신앙생활 하여 원래 작은 열매라도 맺혀 있어야 하는데, 겉으로만 대단한 척, 화려한 척, 뭐가 있는 것처럼 하면, 예수님의 저주 아래 놓이게 된다는 것을 경고하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번 말씀에서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는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묵상한 적이 있습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겨자씨는 분명 존재하고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새들이 와서 깃드는 안식처가 된다는 말씀을 주시며, 우리가 겨자씨와 같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 겨자씨조차 없다면, 하나님 나라는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영원토록 그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주시는 말씀이 그와 같은 맥락에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지금 작은 열매라도 있습니까? 아직 완전하게 무르익지는 않았지만, 작은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혹시 오늘 무화과 나무처럼, 겉으로만 마치 무엇이 있는 것처럼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우리가 작은 열매, 겨자씨와 같은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면 때가 차매, 큰 열매를 보게 하실 줄 믿는다. 처음부터 큰 열매를 맺히려고 한다면 그것은 착각입니다. 작은 열매에서 큰 열매로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작은 열매 자체가 없다면, 그 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거룩한 교회와 성도들은 비록 지금 때가 되지 않아 작아 보여도, 분명 예수님께서 찾으시는 그 작은 열매라도 맺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