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1일 하.복.주.새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송영종

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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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마가복음 8장 11~13절

  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께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2. 예수께서 마음 속에 깊이 탄식하시며 가라사대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게 표적을 주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3. 저희를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

오늘 본문의 말씀은 마태복음 16장에서도 이미 살펴본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하늘의 표적을 보여주기를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깊은 탄식과 함께 이 세대는 표적을 구하나, 나는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시며 그들을 떠나 가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약간 다르게 쓰여진 것을 볼 수 있는데, 거기에서는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 줄 다른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나옵니다. 아무튼 요나의 표적을 말씀하셨든, 혹은 오늘 본문처럼 아무 표적도 보여 주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셨든지 간에,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더이상 대화를 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떠나가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럼 이 말씀과 사건 속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신 것은 무엇이고,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 말씀의 참뜻과 의미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 먼저 살펴볼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기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의 대화에 사용된 아주 중요한 한 단어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표적입니다. 그것도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바리새인들이 구하였고, 예수님은 더이상 이 세대에게 표적을 주지 아니하겠다고 말씀하신 부분을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이 대화에서 분명한 것은 바리새인들에게 표적은 대단히 중요한 것처럼 보이고, 예수님에게는 그런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처럼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핵심은, 표적이 바리새인들에게 왜 중요한가 하는 것이고, 예수님에게는 표적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신다면, 예수님에게는 도대체 무엇이 중요하다는 말씀일까요? 여기서 우리는 바리새인들에게 표적이 무엇인가부터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는 표적이 왜 이렇게 중요할까요?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신다고 하는 그 메시야를 기다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오시는데, 그 메시야가 오실 때는 대단한 표적이 나타날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생각일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 구원자를 보내시는데 그냥 보내실까요? 대단한 능력과 위엄을 가지고, 세상을 호령할만한 힘을 가지고 이 땅에 보란 듯이 임하시는 신령한 존재가 유대인들의 메시야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토록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표적에 관심을 보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바리새인들의 눈에 예수님은 너무 초라해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따르는 것 같지만, 실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고작 그의 제자12명뿐이었습니다. 하는 일도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말하는 것도 자신들과 달랐습니다. 생각하는 것과 율법과 말씀을 해석하는 것도 바리새인인 유대인들과 너무 차이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자꾸 시험해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시험의 기준이 무엇이었습니까? 표적이었습니다. 그것도 대단한 표적을 구하였던 것입니다. 그 정도가 되어야 그들의 메시야가 될 수 있다고 그들은 판단하였습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그런 바리새인들에게 그냥 표적을 보여주시면 될 텐데, 왜 보여주지 않겠다고 하셨을까요? 표적으로는 구원자를 분별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표적을 보여 주지 않겠다고 하신 결정적 이유는 표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구원자를 발견하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말씀으로 메시야를 찾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문제점은, 자기들이 원하는 말씀으로만 구원자를 찾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그런 말씀의 자세를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처음 메시야에 관한 말씀을 주셨을 그때의 그 뜻을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 말은 구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구원자, 메시야를 보내실 것이라고 선지서에서 예언하셨을 때, 그 메시야는 어떤 자라고 하셨습니까?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시고, 병든 자를 치료하시며, 죄를 범한 자,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는 메시야를 보내신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그런 메시야에 대한 말씀은 빼고, 그들이 원하는 다윗 왕같이 대단한 힘을 가진 메시야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완전히 다른 구원자를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바리새인들은 신앙심이 좋고, 경건한 자들이었지만, 그들은 환상속의 화려한 메시야를 원했으나, 실제 메시야의 모습은 예언의 말씀대로 죄인들과 함께 하신 예수님의 모습이셨습니다. 그들은 표적을 구하나, 표적은 이미 그들 곁에 와 있었고, 그들은 그런 예수님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더이상 표적을 보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허상의 메시야를 찾아 헤매고, 예수님은 오직 죄인된 자신의 백성들을 찾으러 오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메시야와 표적만 바라고 기다리고 있지만,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리 표적을 구하여도, 구원자의 백성이 아니면, 그 표적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겸손하게, 구원자요 메시야를 찾는 자의 참된 모습일 것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도 이런 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들이 믿는다고 말하면서, 말씀이 알려주는 메시야가 아니라, 자기들의 메시야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일수록, 교회 안에서 겸손하지도 않고, 자신들이 죄인이라고 생각지 않으며, 스스로 의인인 척 착각하며 신앙생활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자들의 메시야가 아니라, 자신이 죄인인 줄 알고, 머리를 숙이고, 눈물 흘리며, 겸손하게 자신을 내려놓고, 자기 고집대로 하려고 하지 않는 자들의 메시야이고, 그것이 하늘로부터 오신 진정한 메시야의 표적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거룩한 교회는 낮은 자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그 메시야 되신 예수님을 믿으며, 스스로 겸손히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죽기까지 말씀에 복종하신 그 예수님을 닮아가는 거룩한 교회와 성도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