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0일 하.복.주.새
오직 예수님에게만 집중하라
송영종


오직 예수님에게만 집중하라
마가복음 7장 31~37절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경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경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사람들이 귀먹고 어눌한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더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경계하사 아무에게라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계하실수록 저희가 더욱 널리 전파하니
사람들이 심히 놀라 가로되 그가 다 잘 하였도다 귀머거리도 듣게 하고 벙어리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귀먹고 말 더듬는 자를 고쳐 주시는 말씀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두 귀에 손을 넣으시고, 그리고 침을 뱉으신 후에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에바다”라고 외치셨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의 귀가 열리고 굳은 혀가 풀려서 말을 잘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오늘 내용은 다른 병자를 고치실때와 별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늘 그랬듯이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신 사건을 기록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두가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 사람은 가족이 데리고 온 것이 아니라, 그 동네 사람들이 이 사람을 데리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에게도 가족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 인지, 이 장애를 가진 사람을 데리고 온 무리들은 가족이 아니라 그 마을 사람들이었다는 것은 참 흥미로운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주목할 수 있는 것은 이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찾아올 생각이 없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비록 귀먹고 말을 더듬었지만, 걸을 수 없었다던지, 소문을 모를 수 없었기 때문에, 그가 자신의 장애를 고침 받고 싶어했다면, 그 사람이 직접 예수님을 찾아와 고침 받기를 간청하였을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이 사람의 가족들이 이 장애인을 데리고 오지 않은 것이나, 이 사람 역시도 병을 고침 받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는 것을 추측해 보면, 이 사람은 한 마디로 세상에서 방치된 인물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이 예수님이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사람을 일부러 데리고 온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런 것을 보면, 세상에는 자신이 문제가 있음에도 그것을 해결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은 처음부터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분명 자신의 불행과 문제를 해결하고,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구원의 길과 축복의 기회가 있음에도, 계속해서 저주받은 인생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먼저 믿고 있는 우리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사명을 받은 줄 믿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믿으면, 자신의 불행에서 벗어나 행복하고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데, 그들이 그런 기회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계속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인도할 사람은 다름아닌, 예수를 믿는 우리가 그런 인도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처럼 그 장애인의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그 사람을 예수님께로 인도한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고쳐 주시면서, 특이한 행동을 보이셨습니다. 이 역시 2가지로 살펴볼 수 있는데, 첫째가 예수님께서 그 장애를 가진 사람을 따로 데리고 다른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고쳐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수많은 병자를 고쳐 주실 때, 그 많은 이적과 기적이 예수님의 능력을 자랑하거나, 예수님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평가받고 인정받기 위함이 아니었다는 것은 제가 누차 말씀을 드렸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자신의 신적 능력을 과시하고 싶으셨다면, 오늘 본문처럼, 병을 고치신 후에 사람들에게 자신이 병을 고친 그 일을 알리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더 많이 알리라고 강조하셨겠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실 때마다, 사람들에게 알리지 마라고 수차례 강조하며 돌려보낸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신 기적들과 이적들은 단순히 예수님의 능력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병자를 고치시는 사건마다 예수님께서 전하고 싶은 영적 메시지가 따로 들어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사람을 따로 데리고 가서 고쳐 주신 이유는, 데리고 온 사람들이 병을 고치는 것에 관심 갖기 보다, 고쳐 주신 예수님 에게만 집중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데리고 와서 만약 그 사람이 고침을 받았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말할 지 모릅니다. 사건의 중심이 예수님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야기처럼 떠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따로 데리고 가셔서 고쳐 주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고침 받고 나온 사람과 예수님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인가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의 시선이 예수님 자신에게 고정될 수밖에 없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예수님께서 보이신 특이한 행동은 그 장애인을 고치실 때, 양 손가락을 그의 귀에 넣으시고, 침을 뱉으시며, 손을 그의 혀에 갖다 대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도 얼마든지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굳이 이렇게 번거롭게 병자를 고치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병을 고쳐 주셨을까요? 우리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예수님의 의중을 읽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금 이 환우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무엇입니까? 말을 듣지 못하고,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으로 고치셨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고침 받고 난 이후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 주기 위해 하신 말씀을 이 장애우는 듣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병자에게 입으로 하는 말씀 대신 행동언어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유는 이 사람에게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행동으로 자신이 고침 받았다는 것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입술의 말씀처럼 행동언어를 통해, 이제 이 사람의 입술로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어떻게 하셨고, 자신이 예수님을 왜 믿게 되었는지를 간증하고 고백하게 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렇게 세심하게 치유하신 것입니다. 고침 받고 믿지 않으면 그 고침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치유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믿음을 이 병자에게 심어주고 싶으셨습니다.
사랑하는 거룩한 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관심은 예수님이여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예수님을 제대로 이해하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예수님을 잘못 믿고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제대로 믿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는 참 구원자이심을 믿는 것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 안에서 제대로 증거되어, 더이상 교회 안에서 예수님을 그저 쳐다보는 구경꾼이 아닌 온전히 예수믿는 사람들만이 모이는 교회와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