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31일 하.복.주.새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

송영종

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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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

마가복음 1장 1~8절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4.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6. 요한은 약대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7.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오늘부터 우리는 마가복음을 묵상하며, 말씀이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특별히 마가복음은 4복음서 가운데 가장 장 수가 짧고 내용도 간략합니다. 그것은 저자인 마가의 개인적 성향일 수도 있지만, 할 수만 있으면 사실관계만 자세히 전하고자 하는 마가의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는 오순절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성령임재 사건을 언급할 때 나왔던 바로 그 마가입니다. 사도 바울과 선교여행을 갔다가 중간에 돌아오기도 하였고, 특별히 베드로 사도와 함께 동역한 인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을 기록한 배경과 수신인들은 로마교회에 있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로서, 로마 제국으로부터 고난과 박해를 받고 있음을 위로하기 위해 기록하였습니다. 네로 황제시대 로마 대화제 사건이 난 시점이 AD64인데, 네로는 그 화제를 기독교인들이 낸 것이라고 정치적 희생양을 삼아,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핍박을 하고, 잡아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순교자들이 나오게 되었고, 신앙과 믿음이 흔들리는 가운데, 마가는 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과 그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고난에 대하여 설명하며, 위로와 소망을 전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가복음은 AD64 이후에 기록된 것으로 봐야 하고, 계속해서 핍박받은 로마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가가 오늘 본문에서 제일 먼저 꺼낸 내용이, 세례 요한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보다 몇 개월 앞서 메시야가 오심에 대해 선포하는 마지막 선지자였습니다. 세례요한의 사역은 오늘 본문 2-3절에서 말한 것처럼, 이미 구약 말라기서와 이사야서에서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그 말의 뜻은 세례 요한의 사역은 그냥 자신이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섭리에 따라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광야에서 살았고,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고 하였습니다. 굉장히 금욕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자신의 사역에 자신의 모든 삶이 맞춰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세례 요한의 개인적인 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두가지 있습니다. 그 첫째가 그는 자신을 소리에 비유하였다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자신은 감추고 소리로써의 역할과 기능을 담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라는 사람보다 그 소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소리가 세례 요한의 정체성이었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역할은 우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우쳐 줍니다. 사람들은 자꾸 자신을 드러내려 합니다. 분명 복음을 전하지만, 우리 자신이 그 복음을 전하는 주체임을 부각시키려 합니다. 그래서 복음보다, 예수님보다, 복음을 전하는 자신이 기억되고 각인되기 원합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우리는 그저 소리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요3:30절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정확하게 세례 요한은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앞이 아니라 뒤에 서 있었습니다. 자신이 부각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이 드러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임무요 소명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 세례 요한을 예수님께서는 천국에서 가장 큰 자라(마태복음 11장 11절) 칭찬하셨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감추니, 예수님께서 가장 높은 곳에서 영광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정말 조심해야 할 부분이 이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분명 입술로는 예수님을 말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 같은데, 실상은 자기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복음 이야기하면서, 거기서 자기가 빠지면, 기분 나쁘고 자존심 상해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마태복음 23장 12절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오직 예수님만 드러나고, 우리는 소리인 줄 믿습니다.

둘째로 세례 요한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하는 세례는 회개의 세례라고 하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었습니다. 본문 4절에,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하였고, 자신의 회개의 세례와 예수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세례와는 완전 다른 것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8절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세례에는 두 가지 있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회개의 세례와 성령의 세례, 회개의 세례는 철저하게 죄에 대하여 회개하는 사람에게 주는 세례입니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 부족하다는 것을 세례 요한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령 세례를 받아야 완전한 용서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성령 세례는 아무도 줄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줄 수 있음을 알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외에 죄 용서의 완성을 이루실 수 있는 분은 없다는 것을 세상에 전한 것입니다. 예수님에게서 받아야할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의 세례입니다. 단순히 자신의 죄를 회개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오직 예수님만이 자신을 죄에서 구원해 줄 유일한 구원자로 믿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알지 못하면, 신앙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마음을 수양하는 정도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신앙은 성령 세례를 들어보지도 못하고, 구원도 얻지 못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세례 요한이 전하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복음을 전하는 소리에 불과합니다. 오직 예수님만 드러나기 원하고, 우리는 쓰임 받는 도구가 되기 원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높여 주시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는 회개의 세례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단순히 죄를 고백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받아야 완전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메시지를 결코 잊지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세례 요한같이,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과 사명을 다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