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3일 하.복.주.새
예수님이 보여 주신 메시야의 모습
송영종


예수님이 보여 주신 메시야의 모습
마태복음 11장 1~6절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명하시기를 마치시고 이에 저희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라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각 마을로 전도하러 보내시고, 홀로 다른 동네로 가셔서 예수님 자신의 사역을 감당하고 계셨을 때였습니다. 그때,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아주 중요한 질문을 합니다, 3절에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이 질문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하는 질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 질문을 하라고 시킨 사람은 그들의 스승인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이 질문에 우리는 조금은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세례 요한이 누구입니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라고 말하며, 이 세상에 예수님을 소개한 인물이었고, 실제 예수님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 정도로 예수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세례 요한이 어떻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까요? 지금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정말 메시야인지 아니면 다른 메시야를 기다려야 하는지 그것이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세례 요한이 생각하는 메시야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메시야의 모습이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시켜서, 예수님이 누구인지, 정말 메시야인지 확인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이 주는 의미가 상당히 크다고 생각됩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예수님이 누구인지, 왜 오셨는지, 왜 믿어야 하는지에 대해 관심조차 가지지 않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은 그저 자신이 원하는 것만 얻으면 된다고 교회를 다닙니다. 또 다른 분들은, 예수님을 다르게 알고 교회를 다닙니다. 예수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이고, 언제나 은혜로 받아 주시는 분으로 이해하고, 마음에 안식과 수양을 위해 교회를 오시는 분들입니다. 모두가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시고, 보여주신 하나님의 나라와 그 백성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정말 관심 가져야 할 것은 바로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진짜 우리의 메시야인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답변을 주셨습니다, 4-6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이런 답변을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당시에 자신을 메시야로, 구원자로 외치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말과 주장이 아니라, 실제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를 보여주시며, 또한 자신이 그런 사역이 지금 이 땅에서부터 행하고 계심을 알려주려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례 요한이 지금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메시야가 오면, 금방 세상이 뒤집어지고,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례 요한 자신이 상상하고 있었던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메시야가 와서 이 세상을 구원할 그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인지를 정확하게 가르쳐 주려 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고, 복음 즉 구원받을 수 있는 기쁜 소식을 전하며,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비록 병이 들고 문제가 많다고 하더라도, 그 환우들을 고쳐서 그리고 죄인들을 죄를 용서해 주심으로, 그들을 하나님 나라로 데리고 가시는 분이 바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피 흘리시고 죽으신 예수님, 우리의 구세주이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거룩한 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구세주, 메시야는 말에 있지 않습니다. 말씀과 그 말씀대로 행하는 행위에 있습니다. 더욱이 그 행위가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자신의 백성을 위해 행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디에도 볼 수 없고, 들을 수도 없으며, 경험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구원자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들에게 보여 주고 들려주시며, 경험케 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교회 안에서 제대로 이해되고 받아 드려지지 않는다면, 그 교회와 성도들은 지금 세례 요한과 그 제자들처럼, 혹은 당시 유대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가졌으나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구세주 메시야가 오셨지만 알지 못하여, 영접하지 않고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 말은 지금 우리 교회들과 성도들도 예수님에 대한 이해와 하나님 나라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면, 우리들도 다른 메시야를 찾고 구하며, 자신만의 하나님 나라를 만들려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없는 하나님의 교회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메시야 예수님을 제대로 믿지 않는 가정에 예수님께서 그 가장의 진정한 구원자가 되실 수 있을까요? 또 역으로 말하면, 우리 교회와 성도들의 삶에서 예수님이 보여 주신 그 사역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과연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요?
세상 사람들의 메시야는 화려하고 대단하며 특별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큰일을 하는 사람이 메시야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하신 일은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였고, 병든자들을 고치시며, 세리와 창기와 고아와 과부들의 친구이셨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세상에서 기대하는 메시야의 모습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의 메시야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병든자를 치료하시며, 포로 된 자들을 자유케 하는 일들을 하시는 분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진정한 메시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거룩한 교회와 성도들의 삶에서 메시야 되신 예수님의 모습이 발견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진짜 메시야로 믿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 회복이 이루어지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