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0일 하.복.주.새
하나님의 계명은 둘로 나뉠 수 없다
송영종


하나님의 계명은 둘로 나뉠 수 없다
마태복음 22장 34~40절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그 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신 예수님께서는 많은 시험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처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지속적으로 예수님이 정말 자신들의 메시야이신지 점검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들이 예수님이 메시야이시면 믿으려고 하는 의도를 가지고 시험을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의심에 오히려 확신을 가지기 위해 교묘히 행하는 함정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오늘 말씀도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질문하는 장면을 저자인 마태가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본문 36절 말씀에 나오는 것처럼,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하고 예수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 바리새인들이 율법 중에 어느 것이 가장 큰 계명인지 몰라서 물었을까요? 더욱이 오늘 본문 35절에 그 질문을 한 사람이 율법사라고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율법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사람이 정말 율법 중에 제일 큰 율법이 무엇인지 모를까요? 아닙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에게 제일 중요한 율법은 모세오경이었습니다. 가장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전하여 준 모세 오경을 그들은 모든 법의 기본으로 여기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에게 지금 시험하려고 질문합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도 모를리 없으니 대답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방법으로 정답을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37-39절까지 말씀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37절,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신명기 6장 5절 나오는 말씀을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첫째 계명이라고 정해 주셨습니다. 제일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중요한 점은 예수님께서는 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성경에 있는 그대로 대답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바리새인들도 별다른 말대꾸를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39절에,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하셨고, 그것이 두번째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 역시 신명기 19장 18절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어느 계명이 크냐에 대한 대답으로 구약 말씀으로 대답을 해 주신 것입니다. 그들은 역시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핵심적 내용은 예수님께서 지금 인용하신 신명기 말씀들은 다름아닌 모세 오경에 나오는 말씀이지만, 사실 그 말씀의 근거는 바로 십계명에서 나온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모든 계명의 근거, 제일 큰 계명은 십계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에게 아무런 대꾸를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말씀이 맞는 말씀이기 때문에, 그들은 그저 놀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왜 이들에게 십계명을 지금 제일 큰 계명이라고 가르쳐 주셨을까요? 그것도 이제 곧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실 상황에 놓여 있는 시기에, 이런 말씀을 주신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그것은 유대인들이 십계명을 반쪽만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만 알고 있었을까요?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고 사랑하는 계명만 그들은 목숨같이 지키려 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5계명부터 10계명까지 이웃에 대한 계명, 사람에 대한 계명은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하나님만 잘 섬기고 사랑하였기 때문에, 나머지는 좀 잘못 지켜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오늘날 교회 다니는 교인들의 모습과도 흡사합니다. 교회는 다니고 직분도 받고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 같은데, 사람관계가 좋지 않은 성도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전혀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말씀대로 사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신들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예수 잘 믿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스스로 착각하는 경우가 정말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으심을 앞에 두고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주신 귀한 말씀은 하나님 나라와 그의 백성들은 두 계명을 구별하거나 별도로 생각하지 않는 자들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동시에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것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처럼 착각하거나,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이웃들과 사람들에게 잘못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고, 하나님의 법, 계명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동일한 계명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곧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계명대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에게 위선자들, 회칠한 무덤, 겉과 속이 다른 자들이라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스스로 자랑하지만 실제 아니란 것입니다. 실례로 하나님에게 예물 드렸으니, 부모를 봉양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의 모습이 그런 것이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거룩한 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정말 하나님의 법대로, 주신 계명과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내 마음대로 나누고, 분리시켜서 적용할 수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유대 바리새인들의 이중적 신앙의 모습, 계명을 반쪽만 지키는 행위들이 오히려 더 큰 죄를 짓는 것이라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거룩한 교회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동일한 순종으로, 위선이 아닌 진실됨으로 나타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