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0일 하.복.주.새
하늘의 표적과 요나의 표적
송영종


하늘의 표적과 요나의 표적
마태복음 16장 1~4절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가시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던 기간 내내 유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계속해서 시험하여서, 문제될 것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도 역시 그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이번에는 하늘의 표적을 보여 보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정말 메시야인지 아닌지 그것을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그들이 예수님이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굳이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면 예수님께서 항상 하시는 일이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하시며, 병든 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메시야인지 아닌지를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는 상황임에도 그들은 예수님에게 계속해서 메시야인지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야와 예수님의 모습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은 앞서 세례 요한도 예수님에게 질문한 내용입니다. 그 말은 지금 유대 사회에서 메시야에 대한 생각들이 다 달랐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누구나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메시야가 어떤 메시야 인지에 대해서는 모두가 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지금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확인하기 위해 검증 작업을 해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검증 기준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오늘 본문 1절에 나오는 “하늘의 표적”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하늘의 표적은 상당한 의미가 있는 검증 방법이었습니다. 왜냐면 당시에 유대 사회에 표적을 행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도 세상에 많은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만약 그런 이상한 능력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우리는 그 사람을 메시야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와 같이, 당시 유대인들에게도 많은 사람들이 표적을 많이 행했는데, 하늘로부터 임하는 표적은 인간이 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인간이 할 수 없는 하늘의 표적을 보이면 예수님이 정말 메시야라고 인정해 주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출애굽 당시 모세가 기도하여 하늘에서 맛나와 메추라기가 내려왔던 것처럼, 적어도 그런 하늘의 표적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생뚱맞은 말씀을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하셨습니다, 본문 4절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이고 싶은 표적은 하늘의 표적이 아니라, 요나의 표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유대 바리새인들의 하늘의 표적과 예수님께서 보이고 싶어하는 요나의 표적의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왜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표적을 보이시면 될 텐데, 그것은 행하지 않으시고, 요나의 표적을 보여주기 원한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우리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영적 관점의 차이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유대 바리새인들은 지금 예수님에게 하늘의 표적을 요구하면서, 마치 자신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를 감별하기 원하는 뜻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 표적이 있어야 메시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메시야가 되어서 자신들을 구원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요나의 표적은 메시야를 감별하는 기준으로 제시한 표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자신들의 형편과 처지에서 구원해 줄 구원자로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요나가 큰 물고기 뱃 속에 들어갔다가 3일만에 나오는 표적을 말씀하시며, 죽음과 생명의 문제를 해결하는 구원자가 하나님이 보내신 진짜 메시야라는 것을 말씀하려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아주 주의 깊게 묵상해야 합니다. 유대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잘 알고 믿고 있는 거룩하고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메시야를 지금 자신들이 처한 힘든 상황에서 건져 줄 구원자로 이해하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누구든지 지금 당장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그들의 메시야가 될 수 있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수 없이 많은 메시야를 지금까지 만나 봤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능력 있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메시야가 아닐까 기대하며, 그들을 쫓아다니며, 자신들을 구원해 줄 메시야를 찾아 다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정치적 메시야, 군사적 메시야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들은 메시야가 누구인가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문제에서 자신들을 건져주는 존재는 누구나 메시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기다리는 세상적 메시야였지, 결코 하나님이 보내시는 메시야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구약에서 계속해서 예언되었던 그 메시야는 하나님의 백성을 건지는 구원자라고 말씀하셨고, 그 구원은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죽음과 사망에서 구원하시는 메시야였습니다. 왜냐면 인간은 지금 상황이나 형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죄의 문제였고, 그로 인해 사망과 죽음의 심판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죄와 사망의 사슬을 끊어내어 주는 존재가 바로 진정한 메시야요,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 나라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은 자신들의 인간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세상의 메시야를 원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고, 예수님은 죄와 사망에서 생명과 영생으로 인도해 주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메시야 되심을 알려 주려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의 표적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느 표적을 구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무엇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메시야를 기다리고 믿고 있습니까? 세상적 메시야는 세상에서 우리가 가진 일시적 문제를 해결해 주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우리에게 생명과 영생을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는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믿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