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7일 하.복.주.새

유대인의 구제와 하나님의 상급

송영종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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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구제와 하나님의 상급

마태복음 6장 1~4절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오늘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와 그의 백성들의 삶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산상수훈 말씀 중에서 구제에 대한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구제는 다른 사람들의 필요한 것을 제공해 주거나 도와 주는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제는 어느 누가 하든지 혹은 그 구제의 크기가 크든 작든 상관없이, 구제 자체만으로도 귀한 일이고 칭찬받을 일이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의 구제, 특별히 바리새인들의 구제에 대하여 책망하시는 말씀을 하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 1절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지적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것은 구제 자체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구제하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잘못 되었음을 드러내려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재미있는 비교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람의 구제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상에 대한 비교를 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그 말은 세상의 구제와 하나님의 상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영적인 관계에도 불구하고, 잘 보시면, 구제하는 사람의 마음은 어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까?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에 구제의 목적이 있다는 것이죠. 구제는 하나님과 관계된 것인데, 구제하는 사람이 자꾸 다른 사람에게 보이려고 구제하는 것이라면, 거기에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다는 것이고, 하나님께 로부터 상을 받을 마음이 없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인가? 어쨌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 아닌가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보시고 상을 주셔야 하지 않는가 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논리라면, 하나님이 사람에게 보여주려고 했더라도, 어쨌든 다른 사람을 도와주었으니, 그 선한 행위에 대하여 상을 주시는 것이 맞는 것 같지만, 거기에는 몇 가지의 문제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이 구제를 하면 무조건 하나님께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상을 주어야 합니까? 그러면 누구에게 더 권위가 있습니까? 위에 있는 사람이 구제하면, 아래에 있는 하나님은 상을 줘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종속관계를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상을 받기 위해서 구제를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구제를 했기 때문에 상을 받는 것일까요? 만약 상을 받기 위해 구제를 한다면, 그것은 구제가 아니고 사기에 해당할 것입니다. 상을 받기 위해 구제하는 척 연기를 하는 것입니다. 과연, 그런 구제를 하나님께서 진정한 구제라고 인정하시고 상을 주실까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위선적이고 남을 속이는 사기죄에 해당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제는 단순히 남을 도와 주었다고 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상을 주시는 구제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구제를 하지 말라 하시며, 2절에서 이런 잘못된 행동들을 금하라 하셨습니다, “사람의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당시 유대인들 사회에서는 부자가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할 때마다 나팔을 불어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들이 이런 구제를 하는 것을 알리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철저하게 보여주기 식이고, 사람들의 칭송과 존경을 받기 위한 의도를 가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은 결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하는 구제 행위가 아님을 깨우쳐 줍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구제하는 삶을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구제 방식을 따르는 것에 대하여, 그렇게 해서는 절대 하늘에 계신 하나님에게 상을 받을 수 없다고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 백성들은 어떻게 구제해야 할까요? 본문 3-4절 말씀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며,” 그리고 “은밀하게 하라”고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물으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고 상급에 대한 것까지 덧붙여 영적 비밀을 공개해 주셨습니다. 여기에는 또 두 가지의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첫째가 하나님 나라 백성의 구제는, 세상 나라 사람들과 다르게,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과, 둘째로, 그 구제의 대가는 하나님 나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상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 중심의 삶과 생활을 말씀해 주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주의해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만 여기서 이런 하나님 나라의 중심의 삶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가 하는 점은 우리가 또 새롭게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결코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선포하신 말씀이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느니라 하신 것입니다. 저 멀리 떨어져 있는 하나님 나라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땅에서 새롭게 다시 시작된다는 것이고, 그 시작을 바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통하여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줄 알 수 있습니까? 이 땅에서 이미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거룩한 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유대 바리새인들의 문제점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믿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그 어떤 하나님 나라 백성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 백성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고, 그런 삶을 사는 자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고, 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구제가 아니라 하늘 아버지께서 은밀한 중에 보시는 구제를 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이 오늘 우리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