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0일 하.복.주.새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

송영종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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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

마태복음 1장 18~25절

  1.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2.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하여

  3.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4.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5.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6.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7.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8.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우리는 드디어 신약의 첫번째 복음서인 마태복음의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왜 신약의 처음을 마태복음으로 시작하였는지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지만, 아무튼 그것은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고, 우리가 마태복음을 전반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알아야 할 것이, 마태복음은 누구를 위하여 기록하게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기록하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비록 400년간의 구약과 신약의 중간기가 있었지만, 유대교의 신앙 배경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 성도들을 위하여 저자인 마태는 복음서를 남겼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구약 말라기서 4장을 알고 있고, 그래서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그 메시야 되시는 예수님의 오셨음”에 대해 설명을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어제 구약의 제일 마지막 성경인 말라기 4장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구약 전체를 마무리하시면서, 어떻게 마무리하시며 동시에 또 어떻게 신약을 시작 하실까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래서 “용광로 불 같은 날”의 시작을 말씀하신 것과 그것이 곧 신약의 시작이 될 것임을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는 나라를 이루어 가실 것이라는 것과, 또한 그것을 위하여, 이 땅에 왕으로 임하실 메시야를 보내시고, 그 메시야가, 이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찾는 일부터 신약에서 시작된다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구원의 역사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구약의 끝과 신약의 시작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한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예언을 알고 있는 유대인 기독교인에게 보내는 것은 참으로 기가 막힌 신약의 시작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유대인들에게 제일 중요한 유대인 족보 이야기부터 꺼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왜냐면, 유대인들에게 혈통과 족보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연결 고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몇 사람만 건너 뛰면, 서로 다 아는 사람인 것처럼, 유대인들도 철저하게 혈통과 인맥을 중요시하는 사회였기 때문에, 그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에 있어서 족보만 한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특히나 유대 족보에서 왕의 족보는 반드시 유다 족속에서 나와야 인정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유다 자손이고 또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을 마태는 특별히 강조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바로 ‘그 메시야,’ ‘그 그리스도’가 맞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장 1절에 말씀하기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라고 시작하고, 17절에 가서는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역사의 기준점입니다. 아브라함, 다윗 그리고 무엇으로 나누고 있습니까? 바벨론 포로 시기를 기준으로 잡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어제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바벨론 70년 노예 생활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새 예루살렘 성전과 성을 건축하려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건물을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새 예루살렘 성인 하나님의 나라를 직접 건설하시겠다는 것을 선언하신 것이었기 때문에, 바벨론 사건은 예수님의 족보에 있어서 중요한 기준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는 유대인들에게 그 유대인의 족보만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 더 말해주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성령으로 잉태한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말씀입니다. 과거에도 유대 사회는 특별한 아이가 출생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그 아이를 귀하게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었죠. 그런데 마태는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하여 출생하는 아이에 관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처녀가 잉태한다는 것은 당시에 도저히 받아드려 질 수 없는 사건이었고,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마리아가 부정한 여인으로 취급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가 유대인들도 결코 부정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을 전해줍니다. 그것이 바로 구약의 예언의 말씀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에 정통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도 구약을 줄줄 외우는 사람들입니다. 그 시대에도 그랬습니다. 마치 주문처럼 암기할 정도로 잘 알고 있었죠. 그런데 오늘 본문 23절 말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여기에 정확하게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는 그 말씀을 유대인들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 메시야, 유대인들이 그토록 믿고 따르는 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그 사7:14절 말씀을 유대인들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쫓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기록에 분명 그렇게 되어 있으니, 이제 그가 정말 메시야인지, 아닌지만 확인하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과 행하신 일을 통해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 주로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왜요? 말씀대로 다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거룩한 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우리에게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이 정말 메시야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아야 하고, 예수님을 정말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인 줄 믿습니다. 그리고 주위에 구원자 예수님을 증거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구약의 말씀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 지금, 앞으로의 일도 말씀대로 다 이루질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오셨고, 다시 오실 그 메시야를, 이제는 우리가 이 시대에 전하고 증거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