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6일 하.복.주.새
예배자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예배
송영종


예배자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예배
말라기 1장 6~14절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찐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찐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기를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 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상은 더러웠고 그 위에 있는 실과 곧 식물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폐스러운고 하며 코웃음하고 토색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떼 가운데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사기하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열방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라기서는 학개서, 스가랴서와 같이 70년 바벨론 포로생활 이후에 기록된 계시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학개서는 솔로몬 성전이 파괴된 이후 다시 예루살렘 성전 재건축을 촉구하기 위해서 주신 말씀이고, 스가랴서는 그 두번째 성전인 스룹바벨 성전이 주는 영적인 의미와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관하여 환상과 함께 예언의 말씀을 주셨고, 오늘부터 시작하는 말리기서는 그 재건축된 예루살렘 성전 이후에 성전에서 드려지는 제사와 유대인들의 성전을 대하는 신앙적 태도에 관하여 책망하시고, 또한 동시에 성전 신앙에 대한 태도의 결과까지 알려주는 내용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말라기서는 스룹바벨 성전이 건축되고 난 후 약 100년이 지난 BC 450년경에 기록된 말씀이라는 것이고, 유대인들이 70년 포로생활 후 돌아와 그토록 짓고 싶어했던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난 후에, 정작 유대인들이 그 성전을 어떻게 대하였는지에 대하여 책망하시는 부분들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그 첫번째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성전의 제사 제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정작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난 후에, 제사 제물을 드릴때, 본문 7절을 보면, “더러운 떡”을 드렸다고 지적하고 있으며, 또 8절에는 “눈 먼 희생제물”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고, 심지어 13절에는 “훔친 물건“까지 하나님께 바쳤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두가지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해 주셨는데, 첫째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신앙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6절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시며 분노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리러 오면서 제사 제물을 이렇게 흠이 있고, 더러운 것으로 드리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공경하지 않는 것이라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문제점은 그런 잘못된 제물을 드렸음에도 유대인들은 전혀 잘못을 알지 못하고, 심지어 조금의 죄의식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더럽고 흠이 많은 제물을 드렸음에도 뻔뻔하게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6절에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그리고 7절에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나님께 제사 드리러 오는 유대인들의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조차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지 못하며, 심지어 뻔뻔하기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잘못된 신앙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제사와 예물은 받지 않으실 것이고, 또한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런 자들이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봉헌물을 드린다고 하더라도, 14절에 말씀하시기를, “흠 있는 것으로 속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선언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너무나 두렵고 무서운 경고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거룩한 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이 말씀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짓기를 그렇게 사모하며, 힘들게 마침내 건축을 완성하였는데, 실제 성전을 건축하고 난 이후의 그들의 신앙은 전혀 하나님을 사모하거나,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의 모습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혹시 유대인들이 처음부터 하나님에 대한 신앙심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닐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70년 바벨론 노예 생활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만을 섬기며, 다시는 그런 고통과 슬픔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는데 열심을 다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 다 짓고 나니까, 그들의 마음이 변한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에게 드려야 함에도, 그들은 좋은 것은 자신이 먼저, 하나님은 그 다음에, 그리고 나중에 가서는, 그런 제사 드리는 것조차 번거로운 것으로 귀찮아 하는 모습까지 보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말씀이 유대인들에게만 주는 말씀일까요?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헌금을 드릴 때, 우리의 신앙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교회에서 이런 예배행위 자체를 싫어하고, 예배순서를 귀찮아 하지는 않는지요?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예배의 중심이 하나님에서 예배자 중심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뻔뻔하게도 하나님께서도 이런 예배자 중심 예배를 좋아하실 것이고, 그런 예배를 받으실 것이라고 말하며, 거룩한 예배를 세상적 예배로 변질시킵니다.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해 주일날 교회에 오는 것이 아니라, 일요일이라서 종교활동을 위해 오는 사람들도 많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교모임처럼 교회 출석하는 자들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의 만족을 먼저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하시기를, 그런 예배는 받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예배를 드리는 자에게 저주를 내리시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요구하시는 것은 살찐 송아지와 풍성한 떡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예배자 자신의 헌신과 마음의 자세인 줄 믿습니다. 저는 이 시대의 성전 신앙, 예배 신앙이 인간중심이 아니라 다시 하나님 중심의 예배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며,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임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 거룩한 장로교회만큼은 유대인처럼 변질되지 말고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와 예배를 드리는 참된 교회와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