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8일 하.복.주.새

하박국의 호소

송영종

산
산

하박국의 호소

하박국 1장 1~4, 12~17절

  1. 선지자 하박국의 묵시로 받은 경고라

  2.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3.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대저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4.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니이다

  1. 선지가 가로되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자시여 주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기 위하여 그를 두셨나이다 반석이시여 주께서 경계하기 위하여 그를 세우셨나이다

  2.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

  3. 주께서 어찌하여 사람으로 바다의 어족 같게 하시며 주권자 없는 곤충 같게 하시나이까

  4. 그가 낚시로 모두 취하며 그물로 잡으며 초망으로 모으고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5. 그물에 제사하며 초망 앞에 분향하오니 이는 그것을 힘입어 소득이 풍부하고 식물이 풍성케 됨이니이다

  6. 그가 그물을 떨고는 연하여 늘 열국을 살륙함이 옳으니이까

오늘부터 우리는 하박국서를 묵상하려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 역시 알려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다만 하박국이라는 이름은 하박국서라고 되어 있는 성경 책 이름에서 저자가 하박국이라고 추측을 하는 것이고, 또한 본문 1절에 나오는 말씀처럼, 본인의 이름을 하박국의 묵시라고 하였기 때문에 하박국 선지가가 기록한 계시의 말씀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하박국서는 이전의 선지서들과 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전의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범죄와 멸망을 예언하는 말씀이었다면, 오늘 하박국서는 그 멸망을 앞두고 있는 의인들의 간구를 기록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죄를 범하여 벌을 받고 심판을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만약 하나님 백성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신앙의 정조를 지키며, 하나님을 여전히 사랑하는 그 ‘남은 자’들은 왜 범죄한 그들과 함께 벌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하나님에게 억울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에게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거나, 고통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 달라고 하나님에게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박국서를 잘 이해하려면, 의인이 왜 악인과 함께 고난을 받는지에 대하여 하나님에게 답을 구하고 있는 말씀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이 왠지 낯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2001년 9/11이 터졌을때, 수도없이 던졌던 질문이 바로 이 질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서 사망한 자들만 약 3천명이 된다고 합니다. 아직도 찾지 못한 실종자는 숫자에 포함되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 건물에 갇혀있는 자들을 구하기 위해 올라가던 소방관들의 인명 피해가 많아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던 것을 우리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왜 그들은 알 카에다 테러 집단에 의해 죽어야만 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과거 구약에 하박국 선지자가 지금 하나님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며, 선지서를 쓰고 있고, 우리들에게 그 답을 주기 위해 기록하였습니다.

지금 하박국 선지자가 이 선지서를 기록할 시기는 국제적으로 그리고 국내적으로 굉장히 어지러울 때였습니다. 국제적으로는 과거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하였는데, 지금은 바벨론에게 점령당하였습니다. 이제 앗수르를 빼앗은 바벨론이 남쪽 유다와 애굽까지 먹으려고 남하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나라가 존폐의 위기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당시 남쪽 유다의 위대한 왕이었던 요시야왕이 애굽과의 전쟁에서 사망하였습니다. 그의 아들들을 왕으로 앉혔으나, 그들은 무능하고, 실력이 없는 자들이었기에, 유다 나라가 곧 망할 위기에 처해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 우리가 이런 위기에 처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나라가 망하고 있습니다.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해 줄 왕도, 지도자들도 없습니다. 백성들은 그저 죽을 날 만을 기다리고 낙심과 절망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이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우리도 정말 그런 세상이 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하박국 선지자의 답답한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까?

그래서 본문 2-4절 말씀이 그 답답한 심정을 하나님에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 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이러므로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 12-17절의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다시 한 번 더 하나님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찌하여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13절).”

하박국의 질문과 심정은 왜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역사하신다면, 그들이 우리를 쳐들어오고, 패악한 일을 행하려고 하는데, 보고만 계십니까 하는 것입니다. 다른 죄를 지은 사람들이야, 벌을 내리시고, 다른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그들을 죽이더라도, 할 말이 없지만, 우리는 하나님 잘 섬기고, 믿음 지키며, 여기까지 왔는데, 어찌하여 우리들은 구원해 주시기 않느냐에 대한 원망이 섞여 있는 항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저도 그렇게 기도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박국 선지자가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상숭배로 타락하고, 범죄로 죄악이 가득한 하나님 백성들과 동조하지 않으며,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믿음을 지킨, 그 ‘남은 자’에 대한 문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구원하실 부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하나님의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고, 지켜 주시고, 생명 길로 인도하신다는 믿음을 끝까지 붙잡고 가야 하는 성도의 책임에 대하여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에게, 성도의 일은 성도에게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그 유명한 신앙고백이 나옵니다, 2장 4절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남은 자에 대한 걱정보다, 남은 자는 오직 믿음으로 끝까지 산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거룩한 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일을 다 알 수 있을까요? 설명한다고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대신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어떤 상황이나 환경 속에서도, 오직 믿음으로 사는 의인들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