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1일 하.복.주.새

거룩함과 부정함

송영종

산
산

거룩함 부정함

학개 2장 10~15절

  1. 다리오왕 이년 구월 이십 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2.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는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

  3.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아니니라

  4. 학개가 가로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중에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부정하겠느니라

  5.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6. 이제 청컨대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첩놓이지 않았던 때를 추억하라

16년동안 중단되었던 제2 예루살렘 성전이 다시 건축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성전 건축이 시작될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말씀이, 그 유명한 9절의 말씀입니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전의 솔로몬 성전보다 더 큰 영광을 보게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결코 솔로몬 성전과 비교될 수 없는 초라한 성전에 불과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스룹바벨의 성전을 더 크게 사용할 것이고, 그 영광도 이전의 영광보다 클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실 바벨론에서 70년의 포로 생활을 하고 돌아온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솔로몬 성전보다 스룹바벨의 성전 영광이 크다고 하는 말씀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크기도 작았고, 외모도, 그 화려함도, 솔로몬 성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한 스룹바벨 성전이 왜 더 큰 영광을 볼 것이라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이유를 자주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솔로몬 성전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이제 스룹바벨 성전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외형을 보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임재가 성전의 영광을 결정하는 것임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아무리 초라한 성전이라고 하더라도, 겨우 몇 명이 모인 성도의 예배라 하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되어 있음을 알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결코 사람의 숫자와 건물의 크기가 아니라,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모인 곳과 전심으로 예배하는 자리라면, 그 곳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교회들은 점점 더 화려하고, 더 크고 웅장한 위엄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할수만 있으면, 더 넓은 평수에, 저 멀리서도 보이는 교회 종탑을 세우려고 합니다. 주차장은 백화점 주차장 같고, 교인들은 대형 극장 관람객들처럼, 예배당을 가득 메워, 경배와 찬양을 드리기 원합니다. 어찌보면 그것이 그렇게 나쁘다고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할수만 있으면 많은 자들이 모여, 함께 예배드리고, 경배하는 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울까요! 하지만 문제는 거기에 하나님이 임재하고 계시느냐는 별개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많이 모여, 보기에는 좋은데,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인지, 그리고 그 자리에 하나님께서 임마누엘 하나님으로 함께 계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교회 건물이 크기 때문에, 교인 숫자가 많이 때문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는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있는 곳에 있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무리 가운데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크고 화려한 건물이 없어서, 하나님께서 떠나시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오늘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학개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전해주십니다. 그것은 영적 거룩함과 영적 부정함입니다. 오늘 본문 12절과 13절의 말씀을 보시면, 12절에는 거룩함에 대하여, 그리고 13절에는 부정함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거룩한 고기를 옷에 쌌는데, 그 거룩한 고기, 즉 구별되어 사용된 고기가 다른 음식, 예를 들면, 떡과 포도주, 국이나 기름, 혹은 다른 음식물에 닿았을 때, 그 닿은 음식물이 거룩해질 수 있느냐고 제사장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거룩함이 다른 것과 관계되거나, 연결되었을 때, 그 다른 것이 같이 거룩해질 수 있느냐 하는 질문을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당연히 제사장들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반대로 그럼 부정한 고기가 다른 음식에 닿았을 때는, 그 음식들은 부정하여 지느냐고 13절에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제사장들이 그렇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부정한 것은 닿는 순간, 다른 음식물들이 부정하여 진다는 것이죠.

이 질문은 스룹바벨 성전의 영광과 하나님의 임재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그것은 성전의 영광과 하나님의 임재는 개별적이라는 것입니다. 거룩함은 한 사람이 거룩하다고 다른 사람이 같이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하나님의 큰 영광을 보기 위해서는 하나님 백성 각 사람들이 거룩해져야 경험할 수 있는 영적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아버지가 목사라고 아들이 목사가 될 수 없듯이, 아버지가 장로라고 아들이 무조건 아버지 덕에 천국 들어갈 수 없고, 아들 스스로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함이 있을 때, 거기에서 영광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겠죠. 이 세상에 많은 교회들이 있지만, 모두가 다 거룩한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교회가 거룩한 교회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름만 거룩한 교회라고, 건물을 엄청나게 잘 지었다고, 교인 숫자가 몇 만명이라고,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영광이 있는 것이 아니라, “두 세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 그 곳에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마18:20)”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각자가 영적 거룩함을 가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반면에 영적 부정함은 무엇을 뜻합니까? 한 사람의 부정함이, 전체를 부정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썩은 사과 하나를 사과 상자에 넣어 보십시요. 몇일이 지나지 않아, 그 상자에 있는 사과는 모두 썩은 사과로 변해 있을 것입니다. 거룩함은 개별적이지만, 영적 부정함은 그가 속한 공동체 전체를 부정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부정함에 닿는 순간 부정해지는 것이죠. 우리의 죄악이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부정한 곳에는, 하나님의 임재, 임마누엘 하나님이 없습니다.

거룩한 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왜 성전을 말씀하고, 영광을 언급하시며, 거룩함과 부정함을 말씀하셨을까요? 성전의 영광은 그 속에 있는 성도의 거룩함과 부정함으로 결정됩니다. 우리 모두가 거룩한 공동체가 되어, 오늘 하루가 임마누엘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복된 날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