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9일 하.복.주.새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송영종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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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스바냐 3장 12~20절

  1.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너의 중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찌라

  2.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치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궤휼한 혀가 없으며 먹으며 누우나 놀라게 할 자가 없으리라

  3. 시온의 딸아 노래할찌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찌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

  4.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5.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6.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7. 내가 대회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를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너의 치욕이 그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느니라

  8.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9.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찌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로 천하 만민 중에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제 스바냐서 마지막 장인 3장 말씀을 묵상하려 합니다. 어제 말씀드린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분노의 날에도 숨김을 얻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께서 진노 중이라도, 숨겨 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자들이 누구인가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평소에 꾸준히 지켜 왔던 겸손한 자들과 하나님의 공의를 구하기 위해 살아왔던 자들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결코 종말에 갑자기 신앙이 좋아지고, 평소에 말씀에 순종하지 않던 자들이 순종하는 일은 없을 것이란 말씀까지 드리며, 지금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부터 거룩한 성도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까지 드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12절을 보면, 그 숨김을 얻는 자들이 단순히 말씀을 지키고 순종 잘하는 사람으로만 묘사되지 않고, 그렇게 살려고 할 때, 삶의 형편이 어떻게 되는지도 알려주는 것은 참으로 우리가 주의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 12절을 보시면, 종말에 살아남는 자의 삶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위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하였습니다. 심판과 진노의 날에 구원받는 자의 삶은 결코 화려하지도, 교양 있으며, 고상하게 사는 권력자나 부자의 모습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의 삶은 종말로 갈수록 점점 더 힘들어지고, 가난하여 질 것이라고 설명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고 지킨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한없이 고달플 것이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알려 주시는데, 정말 이런 것을 알면서, 끝까지 그 신앙을 지키며 살아갈 자가 많이 있을까요? 그래서 13절에 말씀해 주십니다. 그런 자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거짓된 혀가 없으며, 먹고 누울지라도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말씀합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자신을 낮추며,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따르는 자는 결코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남은 자들은 다수가 행하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고,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절대로 다수가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기독교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로 그런 소수의 무리들 편에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곁길로 갈때 자신은 단호히 그 길을 가지 아니하고, 힘들고 어렵지만, 좁은 길로, 십자가의 길로 가는 그 무리들을 너무 좋아하시고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17절의 하나님 마음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로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그 남은자, 그 소수의 무리들을 보시며, 하나님께서 너무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기뻐도 너무 기뻐서 하나님께서 그들과 사랑하시며, 그들 때문에, 하나님께서 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하신다고 하십니다. 이 얼마나 대단한 하나님의 칭찬의 말씀입니까? 가난한데 칭찬을 듣습니다. 곤고한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노래를 부르신다고 하십니다. 참으로 세상의 관점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지만, 영적으로 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씀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면 가난하지만 부자이고, 곤고하지만 행복한 우리가 복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이와 같은 말씀을 산상수훈에서 전해주셨지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팔복에 제일 먼저 나오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5장 3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한 데 어떻게 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복받은 자라고 말씀하시며, 그 사람이 천국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과 다른, 영적으로 바라볼 때, 세상이 보지 못하는 천국의 소유자가 될 줄 믿습니다. 세상은 보이는 것을 소유하려고 하나, 우리는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는 자인 줄 믿습니다. 그럼 누가 진짜 복받은 자일까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 남은 자로 주체하실 수 없을 정도로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거룩한 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두가지를 보여 주시고, 우리로 선택할 수 있게 하십니다. 첫째는 보이는 세상을 가지고, 곧 안개와 같이 사라질 이 땅의 것을 소유하려고 애를 쓰며 살아가는 다수의 무리가 되고 싶은 지, 아니면 둘째로 세상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영적 눈으로는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저 천국을 소유하려고 애를 쓰며, 끝까지 그것을 붙잡으려, 비록 가난하고 곤고한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위하여 살아가는 소수의 남은 자가 되고 싶은지, 우리에게 선택하고 결정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을 보지 마시고 나중을 보시기 바랍니다.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시작이 아니라, 우리의 마지막 종착지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정말 지혜로운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노래하시는 소리를 들어 보신 적이 있나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진정한 하나님의 그 자녀를 위해 노래를 부르시며 기뻐하신다고 하십니다. 이 노래는 아무나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께서 우리로 말미암아 즐거이 노래 부르시며, 우리로 인하여 기뻐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경험하고 체험하는 최고의 복된 날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우리가 이미 가장 많은 복을 받은 자들인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