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8일 하.복.주.새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송영종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스바냐 2장 1~3절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찌어다 모일찌어다
명령이 시행되기 전, 광음이 겨 같이 날아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하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찌어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저는 과거 핵폭탄을 실험하는 장면을 다큐멘터리에서 본적이 있습니다. 핵폭탄이 터지고, 세상은 갑자기 섬광이 비치더니, 몇초도 되지 않아, 그 주변의 모든 것들을 다 쓸어버렸습니다. 핵폭탄이 지난 간 자리에는 남아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사람의 모양을 한 인형들은 순식간에 먼지와 같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핵폭탄의 위력이 그만큼 무섭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상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는 많은 사람들은 공포를 느꼈고, 소름이 돋을 정도로 끔찍한 감정을 공유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마지막 심판의 날이 바로 그와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바로 그와 같이 우리 인간 모두를 쓸어버릴 것이라고 사람들은 정말 두려워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스바냐 선지가가 바로 그 마지막 심판의 날,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대해 언급하고 있음을 우리는 발견합니다. 본문 2절에 말하기를, “명령이 시행되어 날이 겨 같이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내리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지어다.” 물론 여기에서 여호와의 분노의 날은 이 세상 종말을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진노의 날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날이 얼마나 무서운 날이 될 것인지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 4절 이후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이웃 나라인 이방 민족들을 하나님께서 진멸 시키시는 모습을 묘사한 것을 보면, 세상의 종말과 유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하나님의 명령이 시행되는 날,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이르게 되는 날은 이 세상에 남아나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종말의 상황 속에서, 스바냐 선지자가 그 여호와의 분노와 심판의 날에도 살아남을 사람에 대해 예언해 주는 말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3절의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스바냐 선지자가 여호와의 심판 날에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첫째가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자들이고, 둘째가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이며, 셋째로 공의를 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구별하기를 세 가지로 구별하였지만, 사실은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유는 여호와의 규례를 잘 지키는 자는 곧 겸손한 자이고, 겸손한 자가 공의를 행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심판 중이라도, 구원하는 자는 여호와의 말씀과 뜻을 겸손하게 지키려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심판과 관계없이 구원을 얻는 은혜를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되어, 환난 중에 해를 당하지 않고, 도피성으로 숨겨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참으로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사람들은 먼지와 티끌같이 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의 안전을 지켜 주시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피할 길을 내시어, 살려주신다는 이 놀라운 예언의 말씀이 우리에게 믿음으로 받아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그런데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가운데서, 저는 두가지의 큰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고, 겸손하며, 공의를 구하는 것이 갑자기 행할 수 있는 것일까요? 평소에는 하나님의 규례와 말씀에 신경도 안 쓰던 사람이 갑자기 종말이 오고, 심판이 온다고 하니, 그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그렇게 겸손과 공의를 구하는 자가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결코 그렇게 갑자기 이루어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둘째 의미를 생각해 보면, 만약 그것이 갑자기 벼락치기 순종이 될 수 없다면, 우리의 신앙과 믿음 생활은 언제 이런 행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평소에, 지금 내가 있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규례와 명령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말로 하면, 평소에 내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신앙 습관이겠지만, 동시에 무엇이 된다는 것입니까? 종말에, 하나님의 심판의 때에, 내가 평소에 하던 하나님 말씀 순종과 겸손과 공의를 구하는 것이, 나를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하게 하는 영적 표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치 출애굽때, 10번째 재앙이 애굽에서 장자를 죽이는 것이었지만,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른 집은 죽음의 사자가 Passover 넘어가 장자가 죽지 않은 것처럼, 평소 내가 하는 말씀 순종과 신앙생활의 적용이 결국 하나님께서 그것 보시고 구원해 주시는 징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평소에 신앙생활 잘하는 사람은 결국 무엇을 준비한 자가 됩니까? 종말을 준비하여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거룩한 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평소 신앙생활과 습관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늘 주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작은 것에 순종하고, 겸손히 공의를 행하는 자는, 심판의 날에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되는 줄 믿습니다. 신앙은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실천하며 적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딤전 4:7-8절을 통해,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그것이 범사에 유익하고,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의 생명을 보장해 준다고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의 날이 언제 올 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마지막 날에도 구원받을 자는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하루가 변함없이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며, 겸손과 공의를 구하는 성도의 삶으로, 마지막 날에 구원이 보장되고, 확증되어 있는 복된 날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