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5일 하.복.주.새

유다가 바알 우상을 숭배한 잘못

송영종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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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가 바알 우상을 숭배한 잘못

스바냐 1장 1~6절

  1.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아의 시대에 스바냐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었더라

  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3. 내가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을 아울러 진멸할 것이라 내가 사람을 지면에서 멸절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4.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거민 위에 손을 펴서 바알의 남아 있는 것을 그곳에서 멸절하며 그마림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

  5. 무릇 지붕에서 하늘의 일월성신에게 경배하는 자와 경배하며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와

  6. 여호와를 배반하고 좇지 아니한 자와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를 멸절하리라

할렐루야, 오늘부터는 스바냐 선지서를 함께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히스기야 왕의 손자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유다 왕 히스기야가 죽고 그 아들 므낫세가 왕을 이어 온갖 악행과 범죄를 저지르고, 또 그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아몬이 왕위를 이었지만, 여전히 그의 아버지 므낫세와 똑같이 하나님 앞에서 우상숭배와 부도덕한 범죄를 자행하였는데, 바로 그 아몬이 활동하던 시기에 사역한 선지자가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스바냐서의 기본적인 메시지는 유다 왕국이 하나님에게 심판 받음과 회복에 대한 말씀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바냐서가 다른 선지서와 차이가 있다면, 스바냐 선지자는 단순히 심판과 회복을 선포하는 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종교개혁을 외쳤던 선지자라는 점에서 특이한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다가올 것이니 회개하라 이렇게 선포만 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혁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말씀을 전하였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1절에 자신을 소개한 다음, 스바냐 선지자는 2-6절까지 하나님께서 남쪽 유다 왕국과 예루살렘 성을 무너뜨릴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왜 심판 받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그런데 참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남쪽 유다 백성들을 멸절시키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 특별히 언급한 우상 이름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잘 아는 이름입니다. 본문 4절 보십시요.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들 위에 손을 펴서 남아 있는 바알을 그 곳에서 멸절하며, 그마림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 하였습니다.

여기서 그마림은 바알을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붙여진 이름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말씀을 보면 바알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그 우상과 제사장들 모두를, 그리고 심지어 유다 백성들까지 모두 멸절시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 말씀이 어떻게 이해가 되십니까? 아 유다가 타락하고 범죄하여 바알이라는 우상을 섬기다가 결국 하나님에게 벌을 받고 죽게 되었구나!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가 흥미롭다고 말씀드린 이유는, 지금 유다 왕국 백성들이 바알이라는 우상을 굳이 섬길 이유가 없는데, 섬겼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냐, 여러분, 바알이라는 신은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인간이 만든 우상입니다. 그러니까, 농사를 짓고, 목축을 할 때, 수확을 많이 하게 해 주고, 날씨도 좋게 그리고 가축들이 새끼도 잘 낳을 수 있도록 바라는 마음에서 인간들이 만든 신이죠.

그런데, 여러분, 만약에 농사도 잘되고, 가축들도 새끼들을 잘낳고, 아무 문제없이 모든 것이 풍요로운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바알이라는 우상을 만든다면, 그것을 여러분은 어떻게 이해하실 수 있을까요? 스바냐가 히스기야 왕의 현손이라고 말씀드렸죠. 그 말은 히스기야 왕때, 남쪽 유다는 나라가 부강하고 살기가 좋은 환경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부족한 것이 없는 시대에 유대 백성들은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풍요를 기리기 위해서 바알이라는 우상을 만들었다? 신앙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단순하게 생각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지금 백만장자로 살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하는 모든 것이 다 잘 되고 있습니다. 부족한 것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합니다. 아! 내 삶이 너무 척박하다. 가진 것이 없어 고달프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지, 누구를 찾아가서 도와 달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어! 라고 한다면 과연 그 사람의 말을 제대로 받아 드릴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데 지금 유다 왕국 사람들이 바로 그런 신앙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이방 나라인 우상을 가져오면서까지 타락하였습니다.

신앙에 있어서 우리가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이런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해서가 아닌데 하나님께서 이미 차고 넘치는 은혜와 사랑과 복을 부어 주셨음에도, 그것이 부족하다고 다른 곳에 기웃거리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해 주지 않은 것처럼, 능멸하고,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내가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야 하는 거야! 하면서 불평하며, 원망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진노의 심판을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없어서가 아닙니다.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충분히 주셨고, 가졌고, 누리고 있음에도 더 가지고 싶고, 누리고 싶은 인간적 욕심 때문에, 더 많이 가지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있는 것까지 뺏겨 버리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영적 눈이 가려지고, 귀는 어두워, 하나님이 보이지도, 말씀이 들리지도 않습니다. 결국 오늘 유다왕국이 여호와의 심판의 날을 맞이하는 것과 똑같은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지금 수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바로 이런 우상숭배와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더 큰 교회, 더 많은 성도를 가지려고 하다가, 다 무너져버릴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거룩한 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으로 귀한 교회를 주셨습니다. 물론 지금은 여러가지 부족한 것이 있지만, 그것보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게 주신것이 더 많음을 고백합니다. 그것에 감사하고, 주신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것에 관심과 열심을 낸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갑절의 복으로 응답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이 영적 원리를 깨닫고, 우리는 오늘 하루가, 이미 주신 것으로 충분히 감사하고 기뻐하며, 그것을 더 잘 사용하여 영광 올려드리는 귀하고 복되 날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