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하.복.주.새

요나의 회개 기도

송영종

사랑의 손길
사랑의 손길

요나의 회개 기도

요나서 1장 17절 ~ 2장 10절

요나서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라고 하면, 아마 오늘의 말씀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유명한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는 요나의 이야기가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피해 다시스로 도망가던 요나가 자신의 잘못인 줄 알고, 바다에 자신을 던지라고 말하자, 뱃사람들이 그를 바다에 던지가, 큰 물고기가 그를 먹어 삼켜 버렸습니다. 그리고 물고기 뱃 속에 삼일 동안 지내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 요나가 비로소 하나님에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며 회개의 기도를 합니다.

먼저 요나의 기도 내용은 간단합니다. 자신이 지금 죽게 되었다는 것이죠. 물고기 뱃속에서 염산과 메탄가스가 나와서 도저히 살 수 없고, 곧 죽게 될 것을 하나님에게 토로하는 것입니다. 이미 삼 일이 지났으니, 요나의 몸은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주목할 부분은 바로 그런 요나가 하나님에게 회개하고 살려 달라고 기도하는 부분입니다.

4절 말씀에 요나가 말합니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이 말은 이미 자신이 하나님에게 버림받았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라는 말이 하나님께서 버리신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그런 일을 자초하였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맞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다시스로 도망간 자기 자신이 그래서 벌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그의 고백이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해석이 담겨 있습니다. 과거에는 주의 성전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는데, 이제부터 바라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을 말하는 것과 이전에도 바라보고 있었는데, 지금 살아나면 여전히 그렇게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는 뜻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나가 이전에도 주의 성전을 바라보고 있었다면, 그가 이렇게 대담하게 하나님에게 대적할 수 있었을까요? 결코 그럴 수 없었겠죠. 그러므로 요나는 이전부터 하나님의 성전을 바라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우리는 지금 요나 선지자에 대해서 계속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선지자가 하나님의 성전을 바라보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을 바라보지 않는 선지자에게 하나님은 왜 선지자로서 사명을 주셨을까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습니다. 지금 교회를 다니면서도,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을 보면, 일면 그럴 수 있겠다 생각이 됩니다. 교회에서 목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 서리집사라는 직분을 받았지만, 결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목사라고 하면서,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장로, 권사, 집사라고 하면서, 무엇을 가르칠 지 모르는 직분자들도 많이 있지요. 사명을 받았지만, 하기 싫다고,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일 안하고 도망가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에게 여전히 사명을 맡기신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마치 주의 성전도 보지 않았던 그 요나 같은 선지자에게 사명을 맡기신 것처럼, 우리 같은 직분자들에게 너무나 귀한 사명을 이 시대에 맡기셨다는 것을 우리는 주의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 해답을 오늘 본문 7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 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이 말씀을 좀 더 현대어로 쉽게 풀어 쓴 현대인의 성경에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내 생명이 서서히 사라져 갈 때 내가 다시 한번 여호와를 생각하며 기도하였더니 성전에 계시는 주께서 내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성전도 보지 않는 선지자에게, 선지자의 사명을 주셨을까요? 그렇습니다. 사명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지난주 첫 번째 설교에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명자를 통하여 주의 뜻을 이루시기 원하십니다. 그가 비록 부족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대적하는 그 사명자에게, 다시 바라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오히려 사명을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요나의 입으로 이런 고백까지 하게 합니다, 9절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서원을 갚겠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께 받은 사명을 감당하겠다고 다짐하고, 또한 반드시 다시 해 내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요나는 깨달았습니다. 이 모든 일을 이룰 수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시라, 오직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다.” 진정한 고백을 하는 진짜 선지자, 진실된 사명자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거룩한 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일반적으로 신앙이 좋고, 사명감이 투철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비전과 사명을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하나님은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사람에게도 사명을 주실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관심이 사명이 아니라 사명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사명을 잘 감당하고, 열매를 많이 맺기를 기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사명을 통해, 전에 바라보지 못한 하나님을 제대로 바라보게 하기 위해, 사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명자에게 중요한 것은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이죠. 우리 모두 사명이라는 거울을 통해, 하나님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사명자들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