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 하.복.주.새
다섯 번째 환상과 이스라엘의 회복
송영종


다섯 번째 환상과 이스라엘의 회복
아모스 9장 8~15절
이제 아모스서의 마지막장인 9장과 마지막 환상인 다섯번째 환상의 말씀을 묵상하며,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심판 중에도 회복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까지 함께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모스 선지자에게 보여주신 다섯 가지 환상 중에서, 다섯번째 환상은 범죄한 나라를 완전히 멸하시겠다는 환상이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9장 1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내가 보니 주께서 제단 곁에 서서 이르시되 기둥 머리를 쳐서 문지방이 움직이게 하며 그것으로 부서져서 무리의 머리에 떨어지게 하라 내가 그 남은 자를 칼로 죽이리니 그 중에서 한 사람도 도망하지 못하며, 그 중에서 한 사람도 피하지 못하리라.” 결코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사람이나, 범죄한 무리를 죄 없다 하시며 가만히 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랑이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사랑을 가지시고 우리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에 대하여는, 그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십자가에 죽이시면서까지 사랑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죄를 덮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죄를 덮는 것이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죠. 만약 자식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데, 부모가 자녀를 사랑한다고, 그저 가만히 보고만 있다면, 그리고 묵인한다면, 아마 그 자녀는 더 큰 범죄를 저지르고, 나중에는 그 부모에게까지 범죄를 저지를지도 모릅니다. 그처럼, 사랑한다고 무조건 다 덮어주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죄를 짓지 않도록 만들며, 그가 지은 죄값을 달게 받게 하는 것 역시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 13장 24절에 보면,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할 정도로, 때로는 매를 대면서까지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범죄에 대한 심판에는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첫째는 세상에 대한 심판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심판이 있습니다. 그럼 이 두 심판의 차이가 뭘까요? 그것은 첫 번째 심판은 완전한 심판, 즉 사망의 심판입니다. 범죄한 인간과 나라들이 당연히 하나님에게 벌을 받아 완전히 멸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심판은 심판 자체는 죄에 대한 심판이기 때문에 똑같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니 어째보면, 더 심한 심판이 내려질 수도 있겠죠. 그러나 차이점은 죽음에 이를 정도의 심판이라고 하더라도, 완전한 사망은 결코 아니라는 점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죄를 지어서 매를 대지만, 자녀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자녀가 죄를 작게 지어서도, 회개를 잘 해서도 아닙니다. 오직 한가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전 4번의 환상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주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다시는 너희를 용서하지 아니하리라”의 말씀이었죠. 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용서하시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8절 말씀입니다, “보라 주 여호와의 눈이 범죄한 나라를 주목하노니, 내가 그것을 지면에서 멸하리라, 그러나 야곱의 집은 온전히 멸하지는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심판을 하기는 하는데, 온전히 멸하지는 아니하리라 말씀을 주시고 있습니다. 야곱의 자손들이 잘 한 것이 있어서 그럴까요? 회개를 멋있게 잘 해서요? 그저 하나님이 선택하신 하나님의 아들, 딸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그렇게 심한 매를 대셨을까요? 그 다음 구절에 나오죠, “보라 내가 명령하여 이스라엘 족속을 만국 중에서 체질하기를 체로 체질함 같이 하려니와 그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체질하듯이 진짜 하나님의 백성을 그 심판 가운데 골라 내겠다는 의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 속에서 알곡과 쭉정이를 가려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곡은 그 심판을 통해 당하는 고통과 고난을 오히려 진정한 회개의 기회로 삼지만, 쭉정이는 어떻게 할까요?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원망하며, 하나님을 부정하는 백성으로 그 정체를 드러내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과정 중에, 결코 하나님의 백성, 알곡은 단 한 알갱이도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끝까지 보호하시고 지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알곡, 하나님의 나라에 살 수 있는 진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를 찾으시고, 그들에게만 다시 회복의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시련을 이겨낸 만큼 더 큰 복과 상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중에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지 않았으니, 복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이죠. 11절 말씀, “그 날에, [회복의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리고 모든 것을 풍성하게 채워 주신다고 약속하시는 말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궁극적 심판의 목적은 죄의 각성, 회복의 소망입니다.
사랑하는 거룩한 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신앙이 좋다, 믿음이 좋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기준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첫째, 그 사람의 삶이 입술의 고백과 일치하느냐입니다. 둘째는 자기가 원하지 않는 상황이 되어서도, 불평, 불만하지 않고, 회개하며 하나님만 바라보며, 회복의 때를 기다리며 소망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의 진짜 모습입니다. 오늘 하루가 이런 회복의 확인하는 기쁜 날이 되길 주이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