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하.복.주.새
의인의 길과 죄인의 길
송영종


의인의 길과 죄인의 길
호세아 14장 1~9절
이제 우리는 호세아서 마지막장인 14장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호세아서를 처음 묵상하였을 때의 핵심적 단어는 부정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두고, 다른 우상을 섬기는 것을 부정한 행위로 정의하시고, 그래서 이스라엘 나라와 민족이 점점 부정부패해 가고, 사회는 부도덕하며 비윤리적 일들이 자행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대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이 듭니다. 점점 세상은 인간성을 상실하고, 사람보다 기계와 짐승을 더 좋아하며, 잘못을 했음에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말은 지금 이 시대가 하나님에 대한 부정한 세대라고 규정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떠나 부정한 세상이 되면, 그런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임하는 것은 인간들을 더 기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은 상실되고, 파괴하며, 하나가 되어야 할 사람들을 서로 갈라놓고, 미움과 다툼과 전쟁으로 모두가 파멸하게 되는 결말을 보게 되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역사였습니다. 오늘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이제 마지막 14장에 와서는, 그렇게 하나님을 대적하고,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던 이스라엘에게 호세아 선지자가 마지막으로 촉구하는 말씀이 1-2절에 나옵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호세아 선지자의 메시지는 바로 회개였습니다. 부정하고 불의한 자가 살 수 있는 길은 회개 뿐이라는 것을 호세아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이 잘못을 했을 때,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벌도 힘들어 하지만, 벌을 받는 것보다 힘들어 하는 것이 회개하는 것을 힘들어 합니다. 인간에게는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어서, 잘못한 줄 알면서도,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하지만 회개는 어려운 것만큼 얻는 것도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잘못 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Sorry 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막혔던 담이 허물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연히 자신이 잘못했으니, 회개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회개하고, 자신의 잘못과 죄를 인정하는 순간부터, 거기에는 다른 은혜와 사랑이 생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용서를 구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자비와 긍휼을 베풀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에게는 어떨까요?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에게, Too late이라고 말씀하며, 거부하시며, 용서해주지 않으실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더 용서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창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에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를 없었던 것으로 처리해 주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매 주일 예배 시간에 사죄의 기도를 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형식상 그렇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를 구하고, 받기 위하여, 그 순서를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전, 혹은 말씀을 받기 전에, 자신의 죄를 먼저 고백하고, 용서받는 긍휼을 얻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무엇이 임하게 됩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가 복으로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것은 그저 회개하고 용서하는 형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신의 약속은 결코 거짓이나 번복됨이 없습니다. 오로지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에게, 다시 은혜의 해를 비쳐 주시며, 성령의 단비를 내려, 우리 인생의 대지를 촉촉히 적셔 주시고, 모든 열매를 얻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고 은혜의 선물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믿어야 신앙이 자랍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3-4절에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 [이제]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에게만 주신 말씀일까요? 우리에게도 주신 말씀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다시 사랑하고, 백합화같이,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막히고 풍성한 열매가 맺히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런 약속의 축복이 정말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죠. 저는 오늘 본문 중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9절 말씀,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은 그 길로 다르거니와 그러나 죄인은 그 길에 걸려 넘어지리라” 하였습니다.
의인의 길과 죄인의 길이 다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인이기 때문에 그 길을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길을 가는 자가 의인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처음부터 의인은 없습니다.
그 좁은 길을 가는 것 보니까, 그 사람은 의인이기 때문에, 그 길을 묵묵히 가는 것입니다. 죄인은 처음부터 죄인이 아니라, 그 죄악의 길로 가는 것을 보니, 죄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 제대로 들으셔야 합니다. 의인이 회개한다는 말도 맞는 말이지만, 회개하는 것이 의인이라는 증거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회개하는 것을 거부하는 자는 곧 어리석게도 죄인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임을 우리는 영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호세아가 마지막으로 호소합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라, 그러면 하나님이 다시 맞아 주시리라!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우리 모두 의인의 길로 가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