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하.복.주.새
재판 받으시는 예수님
송영종


재판 받으시는 예수님
누가복음 23장 22~25절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새벽에 마지막 기도를 마치시고, 가룟 유다가 데리고 온 로마 병정에 잡혀 결국 빌라도의 법정에까지 서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법정은 예수님께서 4번째 빌라도 앞에 서게 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4번째 법정에서도,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그 어떤 죄목도 찾지 못해서, 매질하고 놓아주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유대인 무리들은 예수님 대신 살인죄를 지은 바라바를 대신 풀어주라고 요구했습니다. 죄가 없는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살인죄를 지은 사람은 풀어주라고 말하는 이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대치 상황에서 결론이 어떻게 나올까요? 본문23절이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큰 소리친 사람이 이겼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빌라도는 풀어주라 하고, 유대인들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한다고 야단법석을 떨 때, 이상하게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습니다. 빌라도에게도, 자기를 죽이려는 유대인들에게도, 예수님은 그 어떤 변명을 하거나, 항변을 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더욱이 이 재판은 인간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불의한 재판이었습니다. 어떻게 죄 없는 사람을, 그리고 죄가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면서, 이처럼 죽이도록 허락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이런 불의한 재판에서, 예수님은 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을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불의한 자들에게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 할 필요가 없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정의와 세상의 정의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정의는 돈과 권력, 사람에 따라 변하고, 그때 그때 자신의 입장에 따라 달라집니다. 빌라도가 왜 예수님을 죽이도록 유대인들에게 허락했을까요? 자신의 기득권이 빼앗기는 것이 두려워서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정의는 큰 소리 치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들이 이기는 것이고,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싸워서라도, 이기는 것이 그들에겐 정의인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에게 공의는 그런 세상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이 정의라고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법정에서 말 싸움에서 이긴다고 진정한 공의가 세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침묵하시며, 자신의 변론을 죄인을 구원하시는 자신의 십자가로 대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싸움에서 지는 것이 아니라, 이기고 승리를 외치는 예수님의 소리였습니다. 꼭,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예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정의요, 공의입니다. 하나님 일 하는 것이 옳은 것이고,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자신이 옳은 말을 하고 있다는 증거인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거룩한 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예수 십자가의 의미는 말에 있지 않고 구원하는 능력에 있습니다. 법정에서 예수님께서 변론을 시작하셨다면, 예수님께서 너무나 유창하게 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죽이려는 그 무리들은 또 억지를 악을 쓰며, 예수님을 물고 늘어졌을 것입니다. 어쩌면, 저들은 예수님께서 그렇게 해 주기를 바랬을 지 모릅니다. 그러나, 만약,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면, 아마 유월절의 시간은 다 지나가고, 어린 양으로 유월절 대속제물이 되셔야 할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을 것입니다. 더욱이, 십자가 보혈의 피로 하나님이 선택하신 영혼을 구원하는 역사도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옳음은 누구 말이 맞느냐 틀리느냐 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옳은 것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사는 사람을 의인이라 부르지 않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정의는 모두 상대적입니다. 그저 이데올로기의 산물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항상 옳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정의이고, 언제나 그것은 옳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십자가 지심처럼, 하나님을 순종하며 살면, 설령 내가 억울한 상황을 당하고, 굳이 변명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불의는 심판하시고, 정의는 승리로 변화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저는 오늘 하루, 예수님의 침묵이 결코 실패나 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승리한 것처럼, 말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우리도 승리하는 삶을 사는 성도님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