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5일 하.복.주.새
하나님의 때와 세상의 때
송영종


하나님의 때와 세상의 때
요한복음 7장 1~9절
그 뒤에 예수께서는 갈릴리를 두루 다니셨다. 유대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였으므로, 유대 지방에는 돌아다니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유대 사람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워지니,
예수의 형제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형님은 여기에서 떠나 유대로 가셔서, 거기에 있는 형님의 제자들도 형님이 하는 일을 보게 하십시오.
알려지기를 바라면서 숨어서 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형님이 이런 일을 하는 바에는, 자기를 세상에 드러내십시오.”
(예수의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나 너희의 때는 언제나 마련되어 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수 없다. 그러나 세상은 나를 미워한다. 그것은, 내가 세상을 보고서, 그 하는 일들이 악하다고 증언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명절을 지키러 올라가거라. 나는 아직 내 때가 차지 않았으므로, 이번 명절에는 올라가지 않겠다.”
이렇게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예수께서는 갈릴리에 그냥 머물러 계셨다.
예수님의 사역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때가 차매”라는 시간의 개념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시간과 계획하심의 때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결코 자신의 뜻과 의지로 일하지 않으시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섭리에 따라 모든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조급함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이 타이밍에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이 일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시간은 하나님의 때에 모든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때가 가장 좋은 때이고, 우리 모두에게 유익한 시간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인내하는 것도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사역 중에 하나인 줄 아시고, 그때를 잘 분별할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동생들의 생각이 바로 하나님의 때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3절을 보시면,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에게 “왜 모든 사람들에게 형님이 하시는 일을 보여주시지 않고 여기에 계십니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십시오”라고 떠밀듯이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그들에게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이유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예수님을 자꾸 들어내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였지만,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6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때는 하나님의 때인 카이로스라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고, 너희의 때는 크로노스라는 세상의 시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시간에 맞추어 움직이시고 행동하시지만, 너희는 항상 세상의 시간에 맞춰 움직이기 때문에, 너희는 언제든지 세상의 시간을 자유롭고 사용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대신에 그들이 세상의 시간을 사용하는 만큼 하나님의 시간은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보면, 늘 교회일에 바쁘고 기도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보는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그런 예수 믿는 사람들의 행동이 너무 부자연스럽고 답답하게 보일 것입니다. 자유롭지 못하고 어딘가에 메여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시간인 카이로스, 그때가 차매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로운 자들이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구속되어 자유가 없는 사람들처럼 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완전히 반대로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 시간을 즐기고 있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을 알아가는 깨달음을 배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마음껏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시간을 쓸 여력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가 되면, 소망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기도를 한다는 것을 그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자신들이 완전 자유한 자처럼 보이고, 자기 하고싶은 대로 마음껏 사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들의 그런 삶과 행동은 죽음의 사슬에 메여 끌려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벗어나고 싶어도 결코 탈출할 수 없는 사망의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자신들은 자유하다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시간을 자신의 형제들에게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오늘 말씀 5절을 보면,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말씀한 것을 보면, 예수님의 형제라고 하더라도, 전혀 예수님이 누구인지 예수님이 지금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에게 세상의 때를 따라 살아갈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런 그들에게, 그들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때를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발견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때와 계획은 반드시 믿음을 통해서만 볼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하나님의 시간을 맞추려고 해도 맞출 수가 없고, 그때를 따라 살아가고 싶어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지금 미국에 있고 미국 시간에 맞추어 살아가고 생활합니다. 그런데 자꾸 한국 시간에 맞춰 생활하려고 하면,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남들 다 잘 시간에, 한국 시간은 낮이니까 깨어 있어야 한다고 하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고, 결국 몸에 병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리는 새로운 시간에 맞춰야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런 걱정도, 두려움도 가지지 않고 자기일을 편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시간을 알면, 우리의 신앙과 삶은 전혀 다른 시간에 맞추어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시간을 볼 수 있는 도구가 바로 믿음의 이라고 하는 시계인 것입니다. 믿음의 시계가 있으면, 세상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에 맞추어 생활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일로 걱정 근심하기 보다, 하나님의 시간과 때를 기다리며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전혀 당황하지도, 답답해하지도, 그리고 조급해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저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살아갈까 생각하게 됩니다. 당연합니다. 그 사람은 믿음이 없기 때문에, 세상의 때만 보고 살아가는 것이고, 예수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역사의 때와 은혜의 시간을 알기 때문에, 그때를 잠잠히 기다리고 평안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아는 예레미야 애가 3장 25-26절에서 말하기를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내가 믿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믿음이 하나님의 시간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하나님의 때를 결코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기다리고 인내함으로, 마침내 때가 차매 하나님의 응답과 은혜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이 세상의 흐름에 발 맞춰 예수님에게 살아갈 것을 요구했지만, 하나님의 때를 따라 살아갈 것을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시간에 맞추어 살아감으로, 정확한 시간과 유익한 때에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축복과 은혜를 믿음으로 마음에 평안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