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9일 하.복.주.새

인생의 목적과 사명

송영종

산
산

인생의 목적사명

요한복음 17장 1~6절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시고 말씀하셨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되게 하셔서, 아들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 주십시오.

  2.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모든 사람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그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려는 것입니다.

  3. 영생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4.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성하여, 땅에서 아버지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5. 아버지,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누리던 그 영광으로, 나를 아버지 앞에서 영광되게 하여 주십시오.

  6. 나는, 아버지께서 세상에서 택하셔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드러냈습니다. 그들은 본래 아버지의 사람들인데, 아버지께서 그들을 나에게 주셨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 출교와 배척, 심지어 죽음을 당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전해주시고, 이제 17장에서는 자신의 마지막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자들과 성도들이 걱정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과 부활, 승천과 성령의 임재까지 모두 말씀하신 후에, 하나님 아버지에게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의 내용을 보면,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해 달라는 기도였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본문 1절에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라는 기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이 마태복음 1장 21절에 설명하기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했듯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자신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 백성을 구원하는 것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 올리는 것이 되기 원합니다. 우리 신앙과 신조의 뿌리가 되는 1647년 웨스트민스터 대소요리문답 첫번째 질문; “인간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가”에서 그 해답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히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존재의 목적이 비록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지만,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영화롭게 하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인생 목적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최초의 피조물이었음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탈취하려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여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고, 영원한 원죄를 가지고 이 세상과 온 인류에 사망의 저주라는 굴레를 씌어 주게 되었습니다. 그 말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에게는 구원과 축복이,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다른 것의 영광을 구하는 자에게는 지옥과 저주가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땅에 지옥과 저주의 사슬을 끊고 구원과 축복의 은혜를 전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구원과 축복이 지금 이 땅에서부터 임하는 은혜가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의 목적을 여기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은혜는 우리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많이 번다고, 혹은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하나님으로부터 은혜가 주어지고 복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부어 주시고, 그리고 더 은혜롭고 감사한 것은 이렇게 부족하고 죄 많은 우리도 높여 주시고 영화롭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자들이 하나님께 복을 받을 만한 자격이나 공로가 있을까요?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다 축복의 인물이 된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높이시어 사람들에게 영광 받게 하시는 은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일 때 영광이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할 수 있을까요? 착하게 살면 될까요? 남을 많이 돕고 돈을 많이 기부하면 될까요? 아닙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돈이 많이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대신에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며 우리에게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지 그 해답을 너무나 정확히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하며, 또 한가지 하나님의 이름을 세상에 나타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절과 6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그리고 6절에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하였습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계신 유대 사회는 더욱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고 고백하고, 또 그렇게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말씀대로 하지 않고, 자기가 생각한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항상 말씀으로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알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않거나, 아니면 오히려 부정하며 자신의 방식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하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유대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입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고, 남을 가르치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자들이라고 예수님은 지적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는 것은 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열심으로 행하는 자기 자신의 의(義)를 들어내려고 하는 욕심입니다. 그러다 보면, 하나님의 이름보다 자기 이름이 더 높이 받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이름은 말하는 것 같은데, 실제로 자기를 영화롭게 하는 헛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의 행동은 결코 자신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시지만,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였고, 그것이 곧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이 세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발견하게 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물며 피조물인 우리 인간은 당연히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라고 명령하신 그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므로 사랑하는 거룩한 교회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 우리도 나의 십자가를 지고, 세상으로는 죽고, 그리스도인으로 다시 살아나서, 이 세상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그 이름을 영화롭게 드러내며 사는,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