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6일 하.복.주.새

신앙이냐 목숨이냐

송영종

산
산

신앙이냐 목숨이냐

요한복음 16장 1~8절

  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지 않게 하려 함이니

  2.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하리라

  3. 저희가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4.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이른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 말 한 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니라

  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 묻는 자가 없고

  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지금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예수님께서는 어느 시점이 되면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출교를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의 말씀을 오늘 본문에서 주고 계십니다. 사실 본문에서 출교는 유대인들이 회당이나 공회에서 출교를 당하게 될 것이란 의미로 하신 말씀이고,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유대 사회에서 완전히 추방당하게 될 것이라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공동체에서 격리되어 떠돌아다니는 나그네처럼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 자신의 직장을 포함하여 모든 것에서 제외되고 소외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인데, 그것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런 일들을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은 우리가 이런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전혀 실감할 수 없으나, 만약 이런 위기의 상황에 우리가 직면하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신앙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갈까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이런 고생을 당할 이유가 없고, 더욱이 사회로부터 추방당하여 살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들이 나올 수 있고, 아니면 끝까지 예수님의 이름을 붙잡고 살아가는 신실한 성도들도 있을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늘 이런 모습들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는 배교자들과 끝까지 믿음을 버리지 않고 죽은 순교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목숨을 건 선택을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식하고 신앙생활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직장에서 쫓겨나고, 먹을 식량을 살 수 없으며, 병원과 학교와 같은 사회 보장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을 때, 그때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협박과 회유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편하게 믿을 때는 생사의 선택을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가 정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지 물을 필요도 없고, 알 수도 없으며, 물어도 자신은 예수님을 선택할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지 모릅니다. 하지만 정말 신앙이냐, 목숨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위기의 순간이 오면, 그 때 진정 예수님을 믿는 자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미리 경고해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지금부터 준비하며 신앙생활D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준비된 자가 그때도 견디고 감당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정말 뜻밖의 안타까운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말씀도 예수님께서는 함께 주고 계십니다. 그것은 종교적 거짓 믿음의 착각을 가진 자들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미명 하에 그리스도인들을 추방하고, 죽이는 일을 버젓이 자행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2절 말씀을 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잘못된 자신의 신념과 자기 확신에 찬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면서도, 자신이 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고 옳은 일이라고 착각하고 자아도취에 취하여 그릇된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바로 이런 사람이었지 않습니까? 그는 누구보다 하나님께 충성하고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평생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빌립보서 3장 4-6절에서 그는 스스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다른 사람이 육체를 자랑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나는 더욱 그러하니,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며,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사도 바울이 자기 종교적 열심으로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죽일 때 그가 가진 생각을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믿음과 신념이 똑같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죽이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믿는 것과 예수님께서 알려 주시는 믿음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자기가 믿으면 그것이 믿음이라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전해주시는 말씀으로 믿고, 그 말씀에 따라 행하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래서 바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기까지 말씀에 복종하심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분명 본인이 생각할 때는 의로운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이 결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엎드려야 합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말씀으로 돌아가 겸손하게 순종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 예수님께서 참으로 위로가 되는 말씀을 고난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추방되고, 배척당해, 살기 어려운 것이 오히려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바로 그 위기에 처한 자에게 성령께서 모든 것을 기억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7절 말씀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으로 핍박을 당하게 되겠지만, 오히려 그런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보내시는 성령을 받게 되리라는 말씀이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0절 이하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일들을 해산하는 여인이 고통 가운데 아기를 낳는 기쁨을 보는 것과 같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통이 성령이라는 귀한 선물을 받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받은 자는 세상으로부터 배척을 당하고, 쫓겨난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그것이 예수님을 진짜 믿는 자라는 증거가 됨으로 기뻐하고, 구원의 백성이 될 수 있으니 유익함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종말의 신앙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은 우리를 미워하나, 하나님께는 인정받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