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3일 하.복.주.새

다른 이의 발을 씻긴다는 것은

송영종

산
산

다른 이의 을 씻긴다는 것은

요한복음 13장 1~8절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는, 자기가 이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가야 할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2. 저녁을 먹을 때에, 악마가 이미 시몬 가룟의 아들 유다의 마음 속에 예수를 팔아 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3.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4.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다.

  5. 그리고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른 수건으로 닦아주셨다.

  6. 시몬 베드로의 차례가 되었다. 이 때에 베드로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내 발을 씻기시렵니까?”

  7.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하는 일을 지금은 네가 알지 못하나,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

  8. 베드로가 다시 예수께 말하였다. “아닙니다. 내 발은 절대로 씻기지 못하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모든 공생애를 마무리 지으시고, 마지막 사역인 인간의 죄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고통 가운데 죽으실 것과 또한 삼일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때가 되었음을 아시고, 제자들을 불러 모으셨습니다. 그리고 겉옷을 벗고, 수건을 두르시며, 제자들의 발을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씻겨 주기 시작하였습니다. 요한복음에서 특이한 점은 예수님의 성만찬 기록이 없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이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사도 요한이 성만찬도 중요하지만, 그 만찬이 한참 진행 중에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이 사건을 기록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사실 당시에 스승이 제자들의 발을 씻긴다는 것은 상상을 할 수 없는 너무나 특별한 일이었기 때문에, 사도 요한이 이 내용을 기록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이 장면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높고 낮음이 없이 누구나 평등하고 다른 이를 섬기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백성들의 발을 씻기시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일이라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우리가 다른 이들의 발을 씻기시는 것이 이상할까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오래 전 한국의 손양원 목사님은 나병환자들이 사는 촌에 들어가 목회하시면서, 그들의 발에서 나오는 고름을 입으로 빨아 뽑아 내신 일화가 회자된 적이 있습니다. 손으로 만지기도 힘들텐데, 손목사님은 병든 이들의 상처에 입을 대시며, 그들을 섬기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할까요? 우리는 안타깝게도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고, 아는 것이 없으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유일한 분이 바로 하나님 나라에서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백성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는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친히 본이 되어 보여 주셨습니다. 하늘 보좌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두르시며 낮은 자리에서 백성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3장 11-12절에 예수님께서 또 이렇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또 누가복음 6장 31절에서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에서는 자기 겸손과 내려 놓음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제일 큰 특징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어야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미 자기는 내려 놓고 산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보여주시는 것은 행함이 있는 백성의 삶을 말씀하고 있다는 점을 잊으면 안될 것입니다. 아는것과 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겸손은 말에 있지 않고, 행함이 있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시키시는 자리에 계셨지만, 시키지 않으시고, 낮은 자리로 내려오셔서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삶으로 보여 주신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되었음이 우리의 실생활 속에서 들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런 모습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던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질문했습니다. 6절에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하고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사실 이 질문에서도, 저는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베드로가 정말 예수님께서 자신의 발을 씻기는 것이 불편하고, 그렇게 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면, 그 즉시 자신이 예수님의 발을 씻기려고 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대답해 주십니다, 7절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받으면 이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왜 벌어지는지 그 자체를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겠죠. 아직도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예수님의 제자들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주의 나라가 임할 때, 자신의 아들을 예수님의 좌우편의 자리에 앉게 해 달라고 요구할 정도였으니까요. 아무튼 예수님의 대답을 들은 베드로가 마음이 여전히 불편했는지 다시 예수님께 말합니다. 8절,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강한 거부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예수님의 수건을 대신 건네받으려는 의사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때 예수님께서 아주 중요한 말씀 한 마디를 덧붙여 주셨습니다.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예수님의 발 씻음의 행위가 단순히 제자들의 발을 씻는 행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상관이라는 단어입니다. 상관은 단일한 관계에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쌍방간에 쓰이는 용어입니다. 예수님과 제자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과 제자의 관계가 무엇으로 맺어져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발 씻김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 백성의 관계가 무엇으로 맺어져 있다는 말과 같습니까? 남의 발을 씻겨줌과 관계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나와 하나님의 관계는 나(I)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의 증거는 바로 남(You, 이웃)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I) 아닌 그 남을(You) 어떻게 할 때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까? 낮은 자리에서 발을 씻겨줄 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런 영적 관계를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아닌 다른 이의 발 씻김은 단순히 내가 겸손해지는 것을 말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상관된 하나님 나라 일을 내가 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리 거룩한 교회에 하나님을 만나는 이런 영적 발 씻김의 손길들이 많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