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일 하.복.주.새
참된 믿음과 참된 순종
송영종


참된 믿음과 참된 순종
요한복음 5장 1~9절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거기 삼십 팔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오늘 말씀에는 38년 된 병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제 우리가 묵상하였듯이, 예수님은 예루살렘 베데스다라는 연못에 누워있는 이 38년된 병자를 찾아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연못에는 사연이 있었습니다. 가끔씩 천사가 내려와 연못을 움직일 때가 있는데, 그때 제일 먼저 뛰어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에 걸려도 낫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병자들이 그 연못 주변에 몰려, 물이 움직일 때 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바로 본문의 38년된 병자였습니다. 여러분, 38년을 기다렸다는 사실에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저는 이 병자가 정말 집념이 대단하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한 두 번 해 보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빨리 포기하고 다른 곳을 찾아 갔을 겁니다. 그런데 이 병자는 38년을 그 자리에서 연못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면 정말 엄청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이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이 지금 한 사람도 없다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많이 있었겠지요. 그런데 점점 시간이 가면서, 사람들이 지쳐 갔을 것이고, 잔병에 효자 없다는 옛 말처럼, 주변 사람들이 다 떠나고, 38년된 병자를 도와줄 사람이 한 사람도 남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이 병자는 연못에 들어가려는 마음과 의지가 꺾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믿음이었습니다. 모두가 떠나도, 연못에 물이 움직일 때 제일 먼저 들어가기만 하면 자신이 나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하루 종일 그는 연못만 쳐다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아주 중요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6절 말씀,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수님의 이 질문은 조금 당황스러운 질문입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 모든 병자들은 당연히 병을 낫기 위해, 여기에 모여 있습니다. 그런데 38년 된 병자에게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물으시는 예수님의 의도가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정말 모르셔서 묻는 질문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죠. 다 아시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진짜 낫기를 원하는지 물었던 것입니다. 이유는 그의 육신의 병뿐만 아니라 그의 영혼도 고쳐 주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38년된 병자의 문제는 육체의 질병도 문제였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그의 영혼이 병들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 병자만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 이런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문제에만 몰두하다 보면, 그것만 해결되면 모든 것이 다 괜찮을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영혼의 문제가 더 시급한 경우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어야 합니다. 이 병자의 문제도 바로 육신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문제였습니다. 왜냐면 그는 병을 낫기 위해 연못만 쳐다본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 연못은 신앙이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유일한 해답이고, 신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38년된 병자가 예수님과 대화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유대인이면서, 그는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그에게 하나님은 바로 그 연못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질문하셨을 때도, 연못의 물이 움직일 때, 누군가 자신을 제일 먼저 연못에 들어가게 해 주면 나을 수 있다고 대답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생각에 자신이 가진 문제를 당장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믿으면 그것이 신앙이요, 자신의 신이 됩니다. 만약 돈이 해결해 준다고 믿으면 돈이 자신의 신앙이요, 신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 때 보면, 이런 동문서답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묻는 것이 그것이 아닌데, 다른 엉뚱한 대답을 예수님에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대답은 영혼이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대답을 한 병자에게 예수님은 “네가 진짜 병이 낫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던 것입니다. 육신의 병뿐만 아니라 영혼의 병까지 고쳐 주셔서, 완전히 새로운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잘못된 믿음은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고 세월만 낭비하고, 고통과 절망만 안겨준다는 것입니다. 38년 동안 병을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은 정말 귀한 믿음이지만, 그 허망한 믿음은 그에게 아무것도 이루어 주지 못했습니다. 마치 연못이 뭘 해 줄 것만 같은 믿음이, 그의 육신도 영혼도 모두 병들게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38년된 병자의 믿음의 방향을 예수님께로 돌려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 연못에 들어가서 병을 고쳐 보려고 애를 쓰기보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방식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른 믿음을 가지는 것이고, 그것이 진짜 그가 낫는 길이요, 생명을 얻는 방법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문제를 고쳐 주시려 오신 의사가 아니라, 우리 영혼과 육신 모두를 완전히 고쳐 주려 오신 메시야 되심을 그에게 알려주려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너무 신기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38년동안 연못에 목을 메고 있던 사람이 예수님의 그 한 마디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걸어갈 수 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믿음의 대상이 바뀐 것이고, 믿음의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자기 혼자 생각하고 판단할 때는 연못이 해답이었지만, 그는 예수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진정한 해답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즉시 일어나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참된 믿음과 참된 순종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기적의 역사로 나타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제부터 진정한 믿음을 예수님에게 두기 바랍니다. 믿는다는 것은 내가 믿는 것이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를 믿느냐? 입니다. 그래야 그 믿음의 행위와 방식이 다르게 나타나게 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진짜 믿고, 그분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말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는 자꾸 다른 것을 믿고, 자기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를 쓰기 때문에, 여전히 그 문제를 안고 오랫동안 힘들고, 헛된 세월을 보내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거룩한 교회는 히브리서 12장 2절 말씀처럼,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며, 우리에게 있는 육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영혼도 고침 받는 구원의 은혜와 새로운 영적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