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4일 하.복.주.새
예수님이 주신 말씀 그대로 받아야
송영종


예수님이 주신 말씀 그대로 받아야
누가복음 9장 7~9절
분봉왕 헤롯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하여 하니 이는 혹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도 하며
혹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혹은 옛 선지자 하나가 다시 살아났다고도 함이라
헤롯이 가로되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고 하며 저를 보고자 하더라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분봉 왕 헤롯은 헤롯 대왕의 둘째 아들이고,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자신의 이복 동생 빌립의 아내이자 자신의 조카인 헤로디아와 결혼하였으며, 이 일을 책망하던 세례 요한을 옥에 가뒀다가, 나중에는 목을 벤 바로 그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 포악한 분봉 왕 헤롯이 지금 심히 당황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당시 로마 군대의 비호 아래, 갈릴리 일대를 다스리는 헤롯 왕에게 당황스러운 일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오늘 본문 앞에 나오는 사건 때문입니다. 본문 9장 1-6절 까지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12제자를 각 지역으로 보내어, 복음을 전하게 하신 내용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처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많은 이적과 병고침의 역사를 행하였습니다. 지형적으로 갈릴리는 그렇게 크지 않았고, 또 동네와 동네 사이 간격이 넓지 않기 때문에, 12제자들이 행한 이런 소문은 순식간에 갈릴리 전 지역에 퍼져 갔습니다. 그래서, 그 소문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민심이 되었고, 술렁이는 민심은 곧 사람들을 동요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심하게 흔들리고, 이런 저런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제자들의 소문과 사람들의 수상한 움직임은, 금방 분봉 왕 헤롯에게 보고되었습니다. 그러니 헤롯 왕의 입장에서 그런 상황이 당연히 당황스럽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다급해진 헤롯 왕은 과거 자신이 했던 잘못들을 떠올리면서, 자신이 죽인 세례 요한이 살아서 돌아왔나? 아니면 옛날부터 들려오던 엘리야가 나타난 것일까? 만약 그것도 아니면, 옛 선지자 중 한 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이런 소동이 벌어지는 것일까? 온갖 망상과 고민 속에서 이 사람, 저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듣고, 매우 불안해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습니다, 본문 9절 제일 마지막 문장, “이 사람이 누군가 하며 그를 보고자 하더라.” 이 말은 헤롯이 이제야 예수님이 누구인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물론 결국 이 헤롯 왕이 예수님을 빌라도 총독에게 보내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만든 유대인의 왕이었지만 말이죠.
이처럼 오늘 본문은 헤롯 왕에 대한 이야기 외 다른 기록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단순히 헤롯이 예수님에게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이 아니라, 헤롯 왕이 예수님과 복음의 소문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 하는 지점입니다. 헤롯은 처음부터 예수님과 복음의 말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예수님 에게는 아무런 힘도 없었고, 사람들조차 목수 출신인 예수님에게 특별한 관심을 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라고 조롱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역을 해 가시면서, 점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자,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도 예수님에게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 여기에 뭐가 있구나!’ 그래서 심지어 바리새인들 중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이 생기게 되었고,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들이, 단순히 인간 마술사들이 흉내내는 수준하고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예수님을 달리 보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사람들은 예수님이 전해주시는 그 복음의 말씀을 더 듣기 위해 산에도, 들에도 모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분봉왕 헤롯도 그제서야 예수님과 복음의 말씀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헤롯 왕의 이런 관심이 정말 예수님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전하는 말씀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관심을 가졌을까요? 또 한가지, 설령 정말 궁금해서 관심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 관심이 진심이었다면, 그는 결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왕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 헤롯 왕의 관심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을 바라보고, 복음의 말씀을 듣는 자세와 방식이 처음부터 잘못되었던 관심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헤롯이 소문을 듣고 만나보고 싶은 그 예수님에 대한 관심은 너무나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관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것은 당시 유대 사람들이 예수님을 바라보고 말씀을 듣는, 세상에 속한 자들의 관점이기도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예수님께서 전하여 준 복음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어떻게 그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아주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말씀이 문제가 아니라, 그 말씀을 어떻게 듣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이 세상의 백성, 즉 사탄의 백성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지금 예수님과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계속해서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씀을 전하는 자가 아니라, 그 말씀을 듣는 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렇다면, 그 복음을 듣는 사람은 어떻게 들어야 할까요? 거기에는 두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그 복음 자체를, 듣는 그대로 듣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말씀을 증거하면, 전하여 준 그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그대로 듣고, 그 말씀을 가지고 이해해야 합니다. 전하여 준 그대로 받고, 다른 것을 전혀 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둘째는, 자기 자신의 방식대로, 자기 입장에서, 예수님이 전하여 준 복음의 말씀을 이해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헤롯이 바로 그런 방식으로 복음을 이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헤롯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과 사람들의 동요에 심히 당황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아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과 그 말씀을 전하여 준 예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을까요? 바로 자신이 지금 앉아있는 왕의 자리와 결부시켜 이해하고 해석하였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왕의 자리에 도움이 되면 그것은 Good News로 듣고 받아 드리지만, 왕의 자리를 위협하면, 그것이 아무리 하나님 나라에 관한 복음이라 외쳐도, 자신에게는 Bad News가 된다는 것이죠. 오히려 그런 하나님 나라가 오지 않기를 바라고 원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헤롯 왕은 복음을 들어도 늘 불안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권력과 힘을 가진 왕좌에 앉아 있어도, 그는 늘 공허하고, 기쁨도 없고, 전혀 행복하지도 않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무리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과 죄 용서함 받고 영생을 얻은 기쁜 소식을 말해 주고,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세주라고 전해줘도, 그 말씀을 그대로 받지 않고, 믿지 못하면, 비록 하나님 나라와 영생의 말씀을 선포하고 전해줘도, 그리고 그 말씀을 아무리 많이 들어도, 그런 방식으로 말씀을 이해하고 해석하면, 그 말씀에 아무런 은혜를 받지 못하고, 그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오늘 헤롯 왕을 통하여, 우리는 분명히 깨달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아무리 기쁜 소식, 복음을 들어도, 자기에게 좋으면 good news, 복음으로 들리고, 자기에게 거슬리고 기분 나쁘면, 하나님의 말씀도 좋게 들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해 주시는데, 자꾸 자기 생각을 집어넣고, 자기 방식대로 말씀을 받으면, 누구와 같이 됩니까? 오늘 헤롯 왕같이 되고, 또 누구와 같이 될까요? 예수님을 3년이나 따라다녔던 가룟 유다와 같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짧은 말씀 속에 있는, 말씀을 듣는 자가 어떻게 말씀을 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을 바로 깨닫고, 전하여 준 그대로 말씀을 받고, 말씀대로 오신 예수님을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로 믿는 거룩한 교회와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