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31일 하.복.주.새
사마리아 여인이 구해야 하는 예배
송영종


사마리아 여인이 구해야 하는 예배
요한복음 4장 19~26절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오늘 말씀은 어제 우리가 살폈던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온 사건과 정 반대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의 한 여인을 찾아가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자세히 보시면,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아오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찾아가시는 경우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어떤 사람들이 찾아오고, 또 어떤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찾아 가실까요? 주로 예수님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어떤 지위나 위치가 있는 사람들이었고, 예수님께서 찾아가는 사람들은 보통 병자들과 고아와 과부들, 그리고 창녀들과 죄인들과 문제를 안고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왜냐면 그런 사람들은 감히 예수님을 찾아갈 용기조차 없었기 때문이고, 심지어 메시야 예수님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무지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찾아가는 사람들은 흔히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고, 사람 취급도 해주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찾아가셔서 구원의 은혜를 주셨고, 그들은 그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지,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않았습니다. 만약 세상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또는 세상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한 면에서, 오늘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 가신 것은 특별한 은혜를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사마리아 지역은 유대인들이 기피하는 지역이었습니다. 구약 시대에 북 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정복당한 후, 수도였던 사마리아가 부정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지역에 남편 다섯을 두고 살았던, 기구하고 고달픈 인생을 사는 한 여인을 예수님께서 찾아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남편을 데리고 오라고 사마리아 여인에게 요구하셨습니다. 그런 불편한 요구에 사마리아 여인은 바로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인정하였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죄들과 추한 일을 더 이상 숨길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 앞에서 솔직해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예배를 어디에서 드려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당시에는 성전이 두 곳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예루살렘 성전이었고, 또 하나는 사마리아 그리심 산에 있었습니다. 여인은 두 곳 중에 어느 곳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이 여인이 예배하는 장소를 이렇게 궁금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에게 이미 자신의 죄가 들어 났으니, 이제 숨겨왔던 죄를 성전에 가서 제사드림으로 용서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진짜 성전을 알려 주면, 그 곳에 가서 제물을 드려, 자신의 죄를 용서받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 드림으로 자신의 죄를 용서함 받겠다는 이 여인의 마음 중심을 예수님은 불쌍히 보셨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도 꼭 교회 나와서 예배 드려야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어떤 무거운 죄도, 그 어떤 추악한 잘못도, 하나님께 예배 드리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예배하는 자에게 자비와 긍휼로 다 용서해 주시는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는 은혜와 축복의 통로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온전케 하시고, 영혼을 치유하시며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에게 어디에 가서 예배 드려야 하는지 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전혀 다른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21절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그리고 23절,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알려 주셨습니다. 예배는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말 예배의 처소를 찾으려면, 그곳이 곧 성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곳이 되어야 하고, 그러면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바로 그 장소가 예배하는 장소요, 예배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설명을 해 주신 것입니다. 예배의 개념을 장소에서 성령과 진리를 소유한 예배자의 예배 개념으로 정확하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어떤 장소에서 예배를 받으시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찾으시는 자의 예배를 받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배자가 누구라는 것입니까? 성령과 진리를 소유한 자이고, 그런 자들이 드리는 예배가 진짜 예배이고, 그 예배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용서함과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의 예배를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의 예배도 달라져야 합니다. 교회 출석이 목적이 아니고, 예배의 행위가 우리의 관심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요즘 예배에 대한 염려와 걱정이 많이 있습니다. 점점 화려한 행사나 쇼 같은 느낌을 많이 가지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곳은 예배를 너무 무관심하고 무성의하게 그냥 순서에 따라 종교적 절차를 진행하는 요식행위처럼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는 두가지가 없습니다. 진정한 예배자가 없고, 그 예배를 받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곳에 죄의 고백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격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을까요? 예배는 영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현대 교회 예배는 전부 세상적인 것들만 채워지고,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는 죄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진정으로 찾게 됩니다. 자신의 죄를 가지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피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 아버지는 그 예수님 때문에, 우리에게 죄 용서의 긍휼과 한량없는 은혜와 축복을 부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저는 우리 거룩한 교회의 예배가 우리 죄의 고백과 회개의 예배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난 후에 죄 용서함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감격이 있는 예배자들이 되기 소망합니다. 그럴 때, 우리 교회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가 있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우리의 삶의 변화로 이어지게 되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영과 진리로 드리는 우리의 진짜 예배가 죄 용서함의 은혜와 구원의 감격과 감동이 있는 예배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