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일 하.복.주.새

큰 죄값을 탕감 받은 자라면

송영종

산
산

큰 죄값을 탕감 받은 자라면

누가복음 7장 40~50절

  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저가 가로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2. 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3.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4.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가라사대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5.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6.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7.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8.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9.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

  10. 함께 앉은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11.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와 달리 예수님의 인간되심에 대하여 많은 말씀을 기록하였다고 처음 시작할 때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이 죄로 인하여 당하는 고통과 깊은 고민을 함께 공유하시며, 어떻게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과 가르침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말씀은, 우리들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묵상하게 하는 본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느 날 한 바리새인의 집에 예수님께서 식사초대를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인이,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기며, 발에 계속해서 입을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깜짝 놀랐고,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의아해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집 주인인 바리새인 시몬이라는 자가 마음속으로 예수님은 이 여인이 누구인지 알기는 알까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속마음을 아셨을까요? 시몬에게 예화를 들어 설명해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빚진 두 사람이 있었는데,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또 한 사람에게는 오십 데나리온의 빚이 있었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당시 하루 정도 품싹이었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갚을 능력이 되지 않자, 그 빌려준 사람이 두사람 모두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고 말씀하시며, 시몬에게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고 예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당연히 빚을 많이 탕감 받은 사람이, 탕감해준 사람을 더 사랑하겠지요 라고 시몬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책망하듯이 말씀을 이어 가셨습니다. “네가 생각하는 그 죄인 여자는 향유를 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씻기며 입맞춤까지 하였는데, 너는 왜 내게 아무것도 하지 않느냐” 반문하셨습니다. 실제 시몬은 예수님을 식사 초대까지 했지만, 그는 예수님의 발을 씻기지도, 입맞춤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시몬의 얼굴은 창피함으로 가득하였고, 예수님은 여인에게 “네 죄가 사함을 받았다” 말씀하시며, 평안이 가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려는 것은 인간의 구원은 마치 큰 죄의 빚을 탕감 받은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냥 거져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빚이 있다는 것이죠. 그것이 곧 죄를 지은 것이란 의미로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사용하신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이 말씀은 에덴 동산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에게 빚은 진 것을 상기시켜 주시는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에덴 동산을 아담과 하와에게 대리해서 다스리도록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죄를 지음으로 그 에덴 동산을 사탄의 권세 아래 두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죄가 곧 빚이 된 것입니다. 그런 감당할 수 없고, 결코 갚을 수도 없는 죄의 빚을 진 인간을 하나님께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 그 죄값을 탕감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큰 빚을 사랑과 은혜로 탕감 받은 인간이 탕감받은 것으로 마냥 기뻐하고 좋아하며 이제 탕감 받았으니 마음 편하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맞을까요? 아니면 그 은혜에 너무 감사하여 빚을 탕감해 주신 분에게 감사하며 평생 그 은혜에 감사하고 그 분의 뜻대로 사는 것이 옳을까요? 당연히 후자가 옳은 것입니다. 그것은 누가 강요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너무나 당연히 그런 생각과 행동이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하나님께서 인간을 처음 창조하셨을 때 주신 인간의 속성입니다. 그래서 죄를 지은 그 여인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죄를 용서해줄 것을 알고, 믿음으로 예수님께서 향유를 부으며, 자신의 머리털로 발을 씻기고,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철저하게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 줄 알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죄인인 된 자신을 용서해 주시고 구원받게 해 주시는 그 은혜에 당연히 이런 감사의 표시와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겠죠.

그런데 오늘 예수님을 식사 초대한 바리새인 시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마치 자신은 죄인이라고 전혀 생각지 않는 사람인 것처럼 스스로 드러낸 것입니다. 그저 자신이 예수님을 식사초대 했으니 자신은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초대하였지만, 그는 구원자로 예수님을 영접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진정 감사하고, 감사의 표시와 행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대신에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다른 죄인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말은, 자신은 괜찮은데, 저 사람이 문제고, 저 여인은 정말 죄인이야 라고 정죄하는 진짜 죄인의 모습을 시몬이 드러내어 보여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잘 주목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누구에게 구원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죄인인 줄 알고,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자신을 죄인의 신분에서 의인의 신분으로 변화시켜 주신 그 겸손한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죄 사함을 선포하시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며 이제 평안히 가라 하셨습니다. 그 여인은 이제 죄책감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진정한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진짜 죄인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죄 용서함 받은 것으로 감사의 행동과 표현이 당연히 너무나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정말 믿는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얼마나 하나님께 큰 은혜와 구원을 받았는지 그의 행동과 말과 표정에서 묻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 시몬은 어떻습니까? 그는 별로 자신이 잘못하거나 심지어 죄인이라고 생각조차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대충 영접하고, 예수님에 대한 감사의 표시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 은혜를 받은 만큼 표시를 하고, 그 기쁨이 얼마나 큰 지를 행동으로 나타내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어도 전혀 감사하지 못하고, 기쁨과 평안이 없고, 늘 불평 불만만 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오늘 예수님의 예화에 나오는 오백 데나리온의 빚을 탕감 받은 그 사람이 맞을까요? 만약 아무 표시가 없다면, 그 사람은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너무 무지하여 자신의 탕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탕감 받지 못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탕감 받은 자라면, 어떻게 그 탕감해준 하나님과 예수님에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어제 우리가 팔복을 묵상하면서, 자기 만족을 위하는 사는 사람은 늘 파티를 열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자기 가족밖에 모르고, 평생에 그렇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사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정말 예수님의 이 구원의 은혜를 안다면, 그렇게 자기만을 위해 살 수 있을까요? 이 죄인된 여인처럼 예수님께 값비싼 향유를 붇고 머리털로 발을 씻기며 예수님에게 입맞춤하며 살지 않을까요? 그것이 구원받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이라는 것을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새벽 우리에게 주시는 이 말씀을 마음에 잘 새겨서, 우리가 정말 큰 죄의 빚을 탕감 받아 지옥이 아니라 천국과 영생의 구원받았음을 알고, 내 삶 속에 늘 그 감사와 고마움이 밖으로 묻어나오는, 그래서 이 땅에서 사는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 그런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제자들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