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8일 하.복.주.새

누가 잃어 버린 자인가

송영종

산
산

누가 잃어버린 자인가

누가복음 19장 1~10절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난 오늘의 본문 말씀은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독특한 사건입니다. 성경 전체를 다 살펴보아도, 삭개오라는 이름은 오직 누가복음 19장에서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가, 이런 삭개오의 사건을 여기에 적은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목적을 가장 잘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일 마지막 구절인 10절에,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 라는 말씀으로 마무리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이제 누가 그 잃어버린 자인지를 발견한다면, 우리는 누가 그 구원받을 자인지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가실 때, 세리 삭개오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궁금하여 다가갔지만 그는 키가 작아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그대로 돌아가지 않고, 삭개오는 무화과 나무 위로 올라가서, 예수님이 지나 가시는 것을 쳐다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삭개오를 보시고, 예수님께서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말씀하셨고, 삭개오는 즐거운 마음으로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삭개오는 예수님에게 뜻밖의 고백과 결심을 이야기했습니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라고 예수님에게 다짐하였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런 고백을 하는 삭개오에게 더욱 놀라운 말씀을 건네 주었습니다. 9절 말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라고 선포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자세히 보면, 참 재미난 점이 있습니다. 삭개오와 예수님의 대화가 마치 동문서답하는 것 같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제일 먼저 삭개오는 예수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무화과 나무 위에 있는 삭개오에게 예수님께서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너의 집에 유하리라” 말씀을 건네셨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조금 생뚱맞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물론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삭개오가 누구인지 잘 알고 계시겠지만, 아무튼 처음 보는 삭개오에게, 내가 너의 집에 머물 것이라는 말씀은 삭개오의 입장에서는 조금 당황스러운 말씀이라 생각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보는 예수님에게 삭개오가 하는 말이 더 생뚱맞습니다. 자신의 재산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줄 것이고, 혹시 자신이 남들의 것을 빼앗았다면, 4배로 되갚아 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정말 이상하지요. 처음 본 예수님에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삭개오가 그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더 생뚱맞게, 예수님은 이 집에 구원이 임하였고, 삭개오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선언까지 하십니다. 이 말씀이 제일 이해가 가지 않는 말씀입니다. 삭개오는 원래 유대인입니다. 그 말은 삭개오는 이미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미 아브라함의 자손인 삭개오에게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선포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런 생뚱맞은 대화가 오간 내용이 오늘 말씀이고, 여기에 예수님께서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려는 목적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 대화 속에서, 여러분은 누가 예수님께서 찾으시는 잃어버린 자라고 생각합니까? 첫째 오늘 본문에 나오는 잃어버린 자는,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삭개오는 본문 2절 말씀을 보시면, 세리장이었고, 부자라고 설명해 줍니다. 세리장이란 말은 남들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자라는 뜻이고, 부자라는 것은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란 뜻이겠지요. 그런데 여러분, 높은 지위에 부족함이 없는 부자이지만, 오늘 본문을 보시면, 그 어느 누구 하나 삭개오에게 주목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삭개오는 마치 투명인간처럼 보입니다. 실제 예수님께서 지나가실 때, 사람들이 많아서 무화과 나무 위에 올라 갔다고 했지만, 당시 유대사회에서 높은 지위와 부자는, 일반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위해 자리를 비켜주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삭개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은 삭개오의 별칭을 죄인이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비록 삭개오가 높은 자리에 부자였지만, 그는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자였고,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자였습니다. 마치 무리에서 떠나 길을 잃고 헤매는 한 마리 어린 양과 같이 고아가 되었고, 불행하였습니다. 많이 가지고 높은 자리에 있었지만,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의 삶은 공허했고, 무의미했습니다. 삭개오는 그런 자신을 구원해 줄 구세주를 간절히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잃어버린 자 된, 삭개오를 예수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는 즉시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이후에 자신의 재산 절반을 내어 놓을 정도로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있었고,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 그의 삶은 빼앗는 것에서 주는 삶으로 완전히 변하였습니다. 가진 것이 많지만, 그 속에 오히려 공허함이 있고, 악착같이 자기 것을 찾아 먹으려고 애를 썼지만, 결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가진 그를, 예수님은 오히려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구세주로 오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삭개오와 같이, 풍족하게 가지고 있어도, 공허한 인생을 살고 있다면, 예수님을 믿으시고, 구원을 받아 참된 기쁨과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둘째로, 잃어버린 자는 누구인가? 혈통적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닌 자입니다. 삭개오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분명 맞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육신적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믿음의 아브라함의 자손을 찾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 자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자신의 것을 내려 놓고, 새로운 사람이 된 것을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삭개오는 어떻게 했나요? 즉시 자신의 것을 내어 놓았습니다. 과거 자신을 버린 것입니다. 지난 번 말씀에서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지요? 즉시 자신의 아내, 부모, 친지 자녀, 그리고 자신의 모든 소유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야 진짜 제자가 된다고 묵상했지 않습니까? 삭개오가 바로 그런 잃어버린 참 아브라함의 자손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삭개오의 집에 구원이 선포되었습니다. 나를 버리자 모든 것을 주시는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기는 쉬워도, 믿음의 증거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 말은 구원의 증거가 우리 삶 속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무슨 믿음의 증거와 성령의 열매가 있습니까? 그러므로, 이제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말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자신의 신앙과 믿음의 연수를 자랑하지 말고, 진짜 구원받은 자의 증거를 가지고 나타내며, 살아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