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7일 하.복.주.새

우리가 바리새인과 세리일 수 있다

송영종

산
산

우리가 바리새인세리일 수 있다

누가복음 18장 9~14절

  1.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2.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3.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4.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5.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영적교만은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죄를 짓게 되는 가장 무서운 죄악 가운데 하나입니다. 심지어 분명히 좋은 뜻으로 행하는 모든 일들이 실제로는 자신속의 교만에서 나오는 행위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자신이 좋은 일을 했다는 착각 속에서, 스스로 만족해하고 뿌듯해하는 자만 죄를 짓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는 바리새인과 세리에 대한 비유의 말씀을 예수님께서 주셨습니다. 바로 그 영적교만을 가진 자와 죄가 많은 자에 비교를 해 주시면서, 누가 진정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인가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일반적으로 바리새인들이 교만하고 자만한 성도로 분류되고, 세리는 죄가 많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죄인인 줄 알고 겸손하게 나아가는 자로 인식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그렇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다른 각도에서 한번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바리새인들은 영적 교만한 자들이고, 세리들은 겸손한 죄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 비유의 말씀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뜻과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좀 더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는 바리새인들만 교만하고 세리는 교만하지 않았을까요? 그저 바리새인들만 영적 교만을 가지고 있었고, 세리들은 늘 죄인인 줄 알기 때문에,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서 눈물 흘리며,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하였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당연히 교만이 가득 찬 자기 의에 도취되어 있었던 사람임에 틀림없지만, 세리 역시도 교만한 사람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 교만이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죠. 그럼 지금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이 의롭지 않고, 세리가 오히려 의롭다 인정받는다고 말씀하신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리새인도 세리도 모두 교만하고, 자만한 자들이지만,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교만이라는 것이고, 세리들은 교만하고 스스로 자만할 때도 있지만,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의식하는 교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은 하나님 앞에서 상 받을 것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성도라면, 세리는 교만하고 죄를 짓지만, 자신이 이렇게 하면 하나님한테 분명 벌을 받을 텐데 하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벌을 받을 것을 알고, 교만의 죄를 짓는 성도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두 사람 모두 하나님 앞에서, 코람데오의 신앙을 가졌지만,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앞에 서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존재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고, 세리는 하나님 앞에서만은 결코 자신의 죄악을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교회 안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자신은 당연히 신앙이 좋고, 아무 문제가 없다고 전제를 두고, 교회에서 신앙생활 한다는 것입니다. 분명 말은 하나님 앞에서 라고 말하지만, 실제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 있다고 의식한다면, 결코 그렇게 말하거나 행동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반면에 늘 교회에서 자신을 낮추고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돈이 없거나, 학벌이 낮아서 자신을 낮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요. 그런 단순한 차원이 아니라, 돈이 많아도, 자신이 정말 똑똑하더라도, 늘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 앞에서는 그런 돈과 지식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평소 생활에서는 교만하고 때론 자만하여 죄를 지을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만큼은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자를 의로운 자라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진정 겸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줄 믿습니다. 요즘 교인들이 자꾸 욕을 먹는 이유가 바로 교회 안에서 이런 자들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정직함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세리 중 누가 정직한 사람일까요?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 자신이 잘 한 일만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손을 내밀어 하나님에게 상을 받을 것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못합니다.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은 그가 그런 일만 한 것이 아니라, 더 악한 일을 한 것을 알고 계시는데, 감히 하나님을 속이려 든 것입니다. 반면에 세리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잘못한 부분만 고백합니다. 실제로 세리는 자신의 죄를 일일이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숨길 수 없는 눈물을 보이며,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원래 나쁘고 위선적인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늘 겸손한 죄인처럼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두 사람 모두 원죄를 가지고 있는 죄인들입니다. 다만 차이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의식하느냐이고 또 한가지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속이느냐 아니면 정직하게 다 고백하느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리를 의롭다 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의로운 사람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을 속이려고 하지 않고, 정직하게 자신의 죄를 인정하며, 벌을 받아야 될 사람이기 때문에,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비는 그것을 “옳다, 잘 했다” 라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바리새인은 나쁘고, 세리는 좋은 성도라고 이해하지 마시고, 우리 자신이 바로 바리새인이고 동시에 세리의 모습 모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말은 우리는 언제든지 바리새인이 될 때가 있고, 또 어떤 경우는 세리와 같이 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늘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로 의식을 하면서, 자신이 잘한 것을 드러내려 하지 말고, 잘못한 것이 더 많은 줄 알고, 오직 정직하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기를 원하는 성도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거룩한 교회가 자치 잘못하면 이런 바리새인들이 모인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만 거룩한 교회인 줄 알고, 다른 교회와 성도들을 무시하고, 우리 잘한 것만 자랑한다면, 그것은 완전히 영적교만이 가득 찬 영적 우월집단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늘 의식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이루어진 것임을 고백하며 겸손히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세워간다면,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높여주는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이제부터 하나님께 인정받고 높임을 받는 거룩한 교회와 성도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