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6일 하.복.주.새
하나님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송영종


하나님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누가복음 17장 20~30절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좇지도 말라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관심은 어느 누구보다 바리새인들에게 최고의 관심사였습니다. 사실 바리새인들이 발생하게 된 배경이 바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대망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70년 포로 생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에, 유대사회의 신앙과 전통은 많이 약해졌고, 세계 패권이 페르시아에서 그리스 알렉산더 대왕의 시대가 되면서, 헬라 문화까지 들어와, 점점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은 혼합신앙으로, 유대 전통은 헬라 문화로 희석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과 모세 오경의 율법을 강조하며, 선민사상을 다시 회복하려고 힘을 썼던 사람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실제 ‘바리새’라는 말의 뜻은 ‘구별된 자,’ ‘분리된 자’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고, 지금으로 말하면 ‘거룩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분명 바리새인들은 순수 이스라엘 신앙을 지키고, 무엇보다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고, 그의 백성됨을 율법으로 유지하려고 애를 쓴 성도의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유대사회에서 그들은 많은 존경과 지도력을 인정받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너무나 중요한 주제였고, 할 수만 있으면, 로마의 식민지를 벗어나, 독립된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싶어했습니다.
그런 바리새인들이 지금 예수님에게 하나님 나라가 어느때에 오는지를 물어보고 있습니다. 왜 이런 질문을 예수님에게 하였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아무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대답하는지 궁금해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그들에게 20-21절 말씀에,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참 재미있는 것은 지금 바리새인들이 무엇을 묻고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때,’ '그 시기,' 혹은 '시간'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무엇으로 대답해 주셨습니까? 장소적 개념으로 대답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이후에 제자들에게 설명해 주실 때에도 같은 패턴으로 말씀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때’를 말씀하시며, 22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그리고 장소적 의미로, “저기 있다, 여기 있다 하더라도, 거기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는 경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바리새인들과의 대화와 제자들에게 설명해 주신 내용을 통해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시간의 개념이 아니라 장소적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때는 아무리 설명해 준다고 하더라도 준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언제든지 올 수 있고, 언제든지 안 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하나님 나라는 항상 임한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언제 오든지 아무 상관없이 그 나라를 맞이할 수 있고,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나라는 언제든지 온다고 생각하고, 또는 항상 임하였다고 의식하고, 그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 나라가 올 때를 알고 그 때부터 준비하면 이미 때가 늦었다는 말씀이겠죠. 따라서 이미 시기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였다고 생각하고, 그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세상과 구별되어 살아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예수님께서 강조하시기를, 하나님 나라는 장소적 개념으로 이미 “너희 안에 있다”고 설명하십니다. 때는 알 수 없고, 눈으로 볼 수도 없지만, 이미 우리 가운데 있다고 하신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무엇을 말씀하시려고 이렇게 묘한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우리 가운데 이미 존재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나라는 미래에 임할 나라로 착각하지 말고, 오기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우리가 알 수 없는 바로 그날에 임하겠지만, 그렇다고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하나님의 통치하시고 다스리는 나라가 존재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이미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자들에게 말씀해 주시려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이미 하나님의 통하심을 받는 사람은, 이 세상 모든 자들이 아니라, 특별히 이 땅 안에 있지만,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이루어지는 다스림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정확하게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지금 미국 땅에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법과 혜택은 누구에게만 해당됩니까? 그렇습니다. 미국 시민권을 가진 자들에게만 적용이 됩니다. 반대로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미국 시민이라고 하더라도, 그 나라의 법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물론 머무는 동안 그 나라의 법을 잠시 지키겠지만, 실질적으로 모든 지배권과 통치권은 미국에 의해 통제되고 있지 않습니까? 만약 다른 나라에 전쟁이 났다면, 미국은 아마 전세기를 띄워 미국민을 그 나라에서 구출하려 할 것입니다. 이유는 비록 몸은 다른 나라에 있어도, 미국시민권자는 미국이 책임지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미국의 통치 아래 있는 시민권자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의 통치하심과 다스림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자신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 세상을 부정하고 완전히 동떨어진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착각하면 안됩니다. 그런 신앙은 여호와 증인 같은 이단들이나 하는 주장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알려 주시는 하나님 나라는 그런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비록 죄와 사망뿐인 세상 나라에 살아가지만,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의 완전한 임재가 있을 때까지, 하나님의 통치하심에 따라, 그리고 주신 말씀과 계명에 순종하여, 이 땅에서 빛과 소금이 되고, 언제든지 그 나라를 맞이할 수 있는, 하늘 시민권자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미 시작되었음을 그 나라 백성들에게 알려 주려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거룩한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already not yet인 줄 알고, 이 땅에서 구별되어 살아가는, 거룩한 백성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